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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글 읽기의 행복

2020-08-18기사 편집 2020-08-18 0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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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홍인숙 대전대 교수·시인
어쩌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없다고 낙담한 적이 있었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미리 마음을 단속하기에 바빴고, 매사에 정서적인 느낌보다는 이성적인 분석이 앞섰다. 그런 게 세상을 배우는 순서인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명초(明草)'라는 한 편의 수필을 만나며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글 속에 사람이 담기는 글, 수필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 내력이다.

문학의 종류를 나누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시된 서정. 서사, 극양식의 3분법이다. 한국문학에서도 시, 소설, 희곡으로 구분하는 세 갈래설이 보편적인 학설이었는데 1980년대에 조동일 선생에 의해 전통적인 3분법에 '교술'을 포함한 네 갈래설이 제기된다. 수필은 서간, 일기, 비평 등을 포함한 교술에 속한다. 시는 음률과 비유 등을 통해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소설은 허구적인 내용을 개연성 있게 표현하는 서사에 방점을 둔다. 이에 비해 수필은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삶의 의미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자기 고백적 글쓰기이다.

오래전 늦깎이 문학 공부를 계획하면서 지도교수로 모실 분이 어떤 글을 쓰시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입학 상담 전에 그분의 작품부터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저서 목록 중에 '행복은 힘이 세다'라는 수필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때까지 나의 관심 분야는 시였으므로 수필은 그다지 본격적으로 접해보지 못했다. 흔히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무형식의 글이라는 문자적 표현에 매몰되어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잠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필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글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종 담백한 문체 속에 담긴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은 내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고, 작고 여린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세심한 사랑의 언어들은 굳은 심장 속까지 스며들 듯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로 마주 앉아 조근조근 대화하는 듯한 그런 글, 문장의 결에서 느끼는 의미 그 이상의 깊은 감동이었다. 앎으로의 초대 같은 명징한 글 그리고 그 따스함이라니, 이런 분이라면 인생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차올랐다.

'명초(明草)'는 '눈 밝은 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저자는 예민하던 고1 당시 세상이 무너질 듯한 실망과 좌절을 겪은 적이 있는데 계룡산에 올라가 떨어질 생각으로 헤매다 한 스님을 만나 생명의 위로를 받았던 일을 술회한다. 그때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아채고, 따듯한 밥상을 안겨주고, 크게 될 거라고 어깨를 두드려준 그 어른의 기대가 훗날 어렵고 힘든 날을 붙잡아 준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도 그런 어른이 되겠노라고, 누군가 소외된 사람 곁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어른이 있음을 느끼게 하리라고, '눈 밝은 풀'이 자신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리라고.

글이 곧 인격으로 육화된 삶을 바라보는 일은 축복이다. 그랬다. 부족한 제자에게 "괜찮아, 이런 경험도 훈련이야, 실수도 하고 그래야 나중에 조금 부족한 학생들도 품을 수 있는 좋은 선생이 되지" 격려하시던 자애로운 눈빛의 바탕이 글 속에 있었다. 백석의 시 '故鄕'에서 '묵묵하니 맥을 짚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의 醫員'을 통해 고향도, 아버지도 다 읽어낸 눈 밝은 시인을 상상해본다.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나면 삶의 걸음이 달라진다. 글 읽기의 행복, 힘이 세다.

홍인숙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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