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4대강 사업 논란
수해복구 와중에 정쟁 일관
대화.타협의 원칙 충실해야

김시헌 논설실장
김시헌 논설실장
지난 총선 이후 정국은 정치가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혼미하기 짝이 없다. 18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당과 가까스로 개헌선을 저지한 제1야당으로 재편되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치의 작동원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탓이다. 의석의 편차로 갈등은 심화됐고, 중재세력의 부재로 협치는 사라졌다. 걸핏하면 힘으로 몰아붙이는 여당과 극한 저항으로 일관하는 야당만 있었을 뿐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통법당(通法黨)`이 되거나 야당인 통합당이 `퇴장당(退場黨)`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정치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21대 국회 들어 법사위원장 등 원 구성부터 임대차법 등 각종 법률안 처리까지 일련의 과정은 실망 그 자체다. 국회에서 절차적 정의가 도전받는 현실은 법에 의한 지배라는 대의민주제를 훼손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위기이기도 하다. 전적으로 의석의 편중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다양한 계층적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운 정치지형은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킨 국민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야가 정파적 득실에만 매달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외면하면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집중호우로 피해가 급증하면서 정치권의 발길이 민생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와 부동산 시장 혼란에 최악의 수해까지 겹쳐 민심이 급격히 요동치자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수해현장을 찾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봉사활동이 복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마는 수재민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는 긍정적이다. 예전처럼 의전을 중시해 되레 복구활동을 방해하거나 홍보용 사진 찍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를 자제하는 등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하지만 본색은 변함이 없다. 여야의 정쟁은 집값 폭등을 비롯한 부동산 대책에서 검찰인사 논란과 공수처 출범 등으로 이어지면서 날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다음 주 예정인 8월 임시국회에서도 이들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듯하다. 야당은 대여공세의 고삐를 죄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수해 복구를 위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한편에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소환되고,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현 정부와 전 정부의 대리전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해현장에서는 복구하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있는데 뜬금없이 10여 년 전의 4대강 사업을 소환한 것은 정파적 이익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이미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두 차례 감사를 통해 홍수예방에 별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다. 지금은 너나없이 수해복구에 전념할 때다. 정쟁으로 피로감만 조장하는 여야의 행태는 그들만 변하지 않았다는 자기고백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여야의 지지격차가 줄어들면서 여야는 각기 다른 측면에서 몸을 사리는 경향이 역력하다. 지지율이 점점 떨어져 곤혹스런 민주당은 이달 말 전당대회를 위한 순회 합동연설회와 대의원대회 등을 연기하고 수해복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 상승으로 자신감을 찾아가는 통합당은 당명 공모 등 일정을 뒤로 하고 국민 속으로 적극 파고들고 있다. 여야가 이처럼 국민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작 민심이 두렵기 보다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정치가 복원돼야 국민이 편해지지만 여야의 태도로 미뤄 기대난망인 듯하다. 바라건대 8월 국회 소집 전까지 만이라도 정쟁을 자제하면서 수해를 당한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지원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민심이 두렵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든 야든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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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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