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부른다] 박숭현 지음/ 동아시아/ 372쪽/ 1만 7500원

무더운 여름 해양과학자의 안내를 받아 떠나는 남극으로의 여행을 통해 극지가 주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건 어떨까.

저자는 연구 동료이자 하버드대학교 지구행성학과의 교수인 찰스 랭뮤어(CHARLES H. LANGMUIR) 교수와 함께 현재 전 세계의 지구과학자들이 주목하는 화제의 인물이다. 그의 반평생은 바다와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극권 중앙 해령 최초의 열수(熱水) 분출구, 열수 생태계를 구성하는 신종 열수 생물, 빙하기-간빙기 순환 증거, 여기에 판구조론 30년 역사를 뒤흔드는 새로운 `남극-질란디아 맨틀`까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그의 연구팀과 함께 다년 간 지구의 비밀을 풀 중요한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해냈다. 여기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세계 최초`라고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책은 첫 탐사의 회상에서부터 바다와 지구에 얽힌 풍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저자가 반평생의 탐사와 연구를 돌아보며 기록한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땅만 바라봐서는 지구는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말 그대로 지구의 순환은 태양과 우주, 생물체와 지구 내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전지구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바다 또한 그 거대한 순환의 한 축을 이룬다. 바람과 지구의 자전 그리고 대륙의 분포 등 지형적 요소가 조합돼 표층 해류의 움직임을 만들고, 해수의 순환은 지구의 기후를 결정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연구하는 것은 지구를 연구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 운동과 진화사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지구과학자들의 숙원이며, 남극 해저는 이 문을 열어젖히기 위한 열쇠를 품고 있는 미답지이다. 저자는 25년 동안 25회, 우연한 계기로 참여하게 된 온누리호 해양 탐사를 시작으로 매년 꼬박꼬박 배에 타고 탐사를 나가 바다가 품고 있는 지구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탐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연구 내용만이 아니라 탐사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선상 체험이 포함돼 있다. 발파라이소에서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를 떠올리고, 마드리드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그림을 생각하며, 하와이에 가서는 서든 록(Southern Rock)을 찾아 듣는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과학 탐사를 배경으로 한 탐사기이지만, 마치 한 편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남극권 중앙 해령의 열수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명체를 발견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이때 열수 분출구에 붙인 이름이 `무진`이며, 키와(kiwa)속의 신종 게는 아라온호의 이름에서 따서 `키와 아라오나(kiwa araona)`라고 명명했다. 이중 `무진`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딴 이름이다. 무진의 안개를 떠올리게 하는 열수의 형상과 탐사 과정에서 드리운 여러 가지 불확실한 감정 및 모호한 느낌을 오롯이 담은 명명이다.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명명으로 모든 글에는 이런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다.

저자가 책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폭의 대양과 같다. 때로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태평양처럼, 때로는 사납게 넘실거리는 북극해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혹자에게는 여느 사람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통로가, 혹자에게는 대양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참조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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