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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곤의 음악산책] 재즈와 크레올

2020-08-11기사 편집 2020-08-11 07: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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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지난 기고에 우리는 재즈가 매우 다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718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그 후 잠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지만 100년 간 프랑스 문화권에 있었다. 다행히도 프랑스인들은 흑인들에게 관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흑인들에게 가혹한 자들은 앵글로 색슨(Anglo-Saxon)족이다. 넓게 보면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그들은 어쩌면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 극성을 부리던 야만족의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지에 살며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그들의 DNA 속에는 과연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1619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예 수입은 1750년 경에는 이미 20만 명으로 늘어났다.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미국 남서부로 끌려온 이들은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임금도 없이 일을 했다.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마치 짐승처럼 부릴 수 있다는 발상을 한 그들의 오만함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아직도 그들의 후손들은 세계의 돈과 권력을 주무르며 또 다른 노예제도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하튼 재즈의 탄생지를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은 그들보다는 조금 나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프랑스인들이 누구인가. 1789년 발생한 평등의 혁명을 일궈낸 사람들 아닌가. 따라서 식민지에서 남성 프랑스인들과 여성 흑인 노예들이 결혼하는 일들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언급했듯이 바로 1803년 루이지애나 주가 그 무시무시한 앵글로 색슨족들에게 팔려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착한(?) 프랑스인들은 미국을 넘겨주면서 몇 가지 단서를 달아 흑인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었다.

우선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난 흑인들 중 아버지가 프랑스인인 사람들은 백인과 같은 신분을 보장하라! 둘째, 프랑스인 주인이 죽으면 그 흑인 부인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라! 결국 그것은 프랑스인 남자와 결혼한 여자 흑인과 그 자녀들은 모두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일시적인 노예해방선언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프랑스인들을 포함한 백인들의 DNA를 안전하게 보전하려던 우생학적 시도라고도할 수 있는데, 여기서 또한 우리는 백인들의 인종적 나르시시즘을 목도할 수 있다. 역시 그들도 백인(Caucasians)이라는 개념으로 묶으면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렇듯 운 좋게도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던 흑인들, 즉 한마디로 프랑스인들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후손 사이에서 나타난 혼혈인들을 크레올(Creole)이라고 불렀다.

크레올의 어원을 살펴보면 결국 영어의 Creation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는 피조물을 Creature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듯 하다. 즉 그들은 백인들을 아버지로 하여 식민지에서 새로 태어난(창조된?) 흑인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과 구분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흑과 백의 하이브리드 종족인 이들은 자유롭게 백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실제 당시의 예술, 사업, 교육, 법, 종교와 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예를 들면 초기 재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크레올인 클라리넷 연주자 시드니 베셰 (Sidney Bechet)를 예로 들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 Sidney Bechet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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