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론으로 충청지역민 뒤숭숭
개헌 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
국회 분원과 청와대 집무실이 현실적

은현탁 충남취재본부장
은현탁 충남취재본부장
집권 여당의 인사들이 연일 행정수도 이전론에 불을 지피면서 충청지역민들의 맘을 흔들어 놓고 있다.

충청도 사람들과 행정수도 이전은 애증의 관계나 다름없다. 기대도 컸고, 실망도 많이 안겨줬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유권자들에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달콤한 열매였지만, 선거가 끝나면 유야무야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충청도 자존심을 걸고 목청을 높이고, 머리띠를 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이명박 정부 당시 세종시 수정안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오늘날 세종시의 신도심인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완전한 행정수도로 가지 못하고 그 길목에 서 있다. 행복도시는 현재 43개 중앙행정기관과 15개 국책연구기관, 4개 공공기관이 이전해 사실상 대한민국의 행정중심지가 됐다.

집권 여당은 당내 TF를 만들어 연말까지 행정수도를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태세다. 개헌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 청와대와 대사관 이전, 국민투표 추진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위헌 논란을 어떻게 피해 갈 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백가쟁명식으로 터져 나오는 의견들이 어떻게 귀결될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쟁은 벌써 20년이 다 돼 간다.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나 모두 논리적으로 상대편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양쪽 모두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또다시 정쟁을 벌이다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수록 행정수도 찬성론자들은 더더욱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반대 논리라고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세종시의 건설 효과, 국민 여론 등을 좀 더 차분하게 살펴봐야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국적으로 행정수도(정치·행정중심지) 이전에 반대하는 의견이 좀 더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충청지역민들의 의견은 여전히 찬성이 57%로 높았지만 반대 의견도 36%로 만만치 않게 나왔다. 행정수도를 바라보는 충청지역민들의 민심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도 과거에는 충청권의 남녀노소, 모든 직업군을 불문하고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를 위해 추진한 세종시 건설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 13주년, 세종시 출범 8주년을 맞았지만 수도권 집중은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만든 세종시가 대전·충남북의 인구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세종시가 당초 취지와 달리 충청권 인접 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가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과밀을 말끔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수도권의 정부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의 이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행정수도 이전을 들고 나왔는데 국회와 청와대가 세종시로 내려온다고 한들 수도권과 지방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행정수도 전략을 보완하거나 괘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세종시가 `인구 블랙홀` 오명을 벗고 진정한 행정수도가 되려면 행정기관뿐 아니라 대기업이나 수도권 국립대학까지 품을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 국민들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도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행정수도 건설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이 더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개헌이나 국민투표를 서두르기보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다. 국민 여론이 반반으로 엇갈리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현재로서는 국회 분원과 청와대 집무실을 세종시에 두는 것이 불필요한 논쟁을 없애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것으로 행정수도로서의 지위는 어느 정도 확보 가능하다. 은현탁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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