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간호사칼럼] 슬기로운 학교생활

2020-08-04기사 편집 2020-08-04 11:42:27     

대전일보 > 라이프 > H+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이민정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최근 자녀를 전학시킨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코로나19로 학생끼리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짝꿍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수업만 듣고 하교하는데 학교 적응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든지 학교 가기가 싫다는 자녀를 이해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6년 동안 4군데 학교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나에게 '전학'이 초등학생에게 얼마나 큰 사건, 스트레스였는지 나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첫 조직생활이라 할 수 있는 학교생활을 기억해본다.

시골에서 대전으로 전학을 온 초등학교 2학년 때, 앞, 뒤, 옆 친구들은 나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여유롭지 않은 나의 가정환경을 금새 눈치 챌 수 있는 필통, 노트, 가방, 나의 차림새, 그리고 시골에서 살았다는 것이 어린 친구들 눈에는 그저 그런 여자애로 보여졌던 모양이다. 사회성도 제로였던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선뜻 말을 건넬 줄 아는 성격도 아니었다. 내 주변 가까이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 보다는 나를 괴롭히는 일에 힘을 모으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 부모님의 관심은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에 다니던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고 눈물바람이었던 언니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부모님께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나 또한 학교를 가는 지름길이 있음에도 돌아 돌아 학교에 갈 정도로 등교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였을 만큼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했지만 말이 없던 나는 부모님 눈에는 그저 학교생활에 적응을 꽤 잘하는 둘째 딸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학교생활이 늘 그렇게 괴롭기만 했다면 나도 탈이 났을 것인데 나의 학교생활에 변화가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 날은 모래가 잔뜩 담긴 쓰레받이를 손에 들고 있던 그 친구와 내가 우연히 부딪히게 되었고 눈에 잔뜩 모래가 들어간 나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무서운 마음에 큰소리로 울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친구는 나를 부축하여 양호실에 데리고 가 주었고 눈 세척을 다 한 후에 친구 얼굴을 보니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연신 내게 자기가 보이냐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할 때는 '괜찮다'고 답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또한 연신 괜찮다는 말을 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평소처럼 돌고 돌아 등교를 하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먼저 "민정아, 너도 이 근처 살아?" 먼저 말 걸어 주면서 나란히 걷게 되었고 짧은 등굣길에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게 되면서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등굣길 친구가 생긴 후 돌아서 갔던 등굣길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학교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의 친구, 그리고 또 그 친구의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친절하게 말 걸어주는 친구들이 생겼고 하교하는 길에도 같이 해주는 친구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당시 9살 어린 나이지만 친구가 있는 학교생활은 곧 즐거움이고 그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 걸어줬던 친구처럼 나 또한 전학 온 친구들에게 먼저 말 걸어주어 관심을 보여주는 건 그 친구를 위해 필요한 착한 행동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새로운 환경, 사람들 사이에 나만 등장하게 되는 전학을 2번 더 경험하게 되었는데 전과 다른 점은 전학을 갈 때마다 빨리 친구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마음 속 미션을 가졌고 그건 하루라도 빨리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한 나의 필살기이기도 했다. 친구가 되기 위해 마냥 기다릴 필요가 없고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하고 낯선 친구에게 다가설 때는 뾰족한 말 보다는 둥글둥글한 말로 가까이 다가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들에게 친구를 많이 사귀었냐고 물으면 "안돼, 친구랑 가까이 얘기하면 안돼. 밥 먹을 때만 마스크 벗을 수 있어"라며 아직도 유치원 친구들의 이름만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초등학교 4학년 큰아들은 "엄마, 어떤 친구는 학교에 아예 안 와요. 엄마랑만 공부하기로 했대요." 내 주변 엄마들도 요즘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너무 잘 나왔다며 학교에 갈 필요 없이 홈스쿨링 해도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우리는 가끔 학교가 우리 아이들이 가족을 벗어나 작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중요한 공간임을 잊을 때가 있다. 학교는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약속, 규칙, 질서 등을 배우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누는 것을 배우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정상적인 학교생활로 학습 부진이 이어지고 이를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기주도 학습을 위한 방법이 나열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우리가 진짜 중요하게 걱정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활동 등에 익숙한 우리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마음과 몸을 부딪히며 터득하는 '관계 맺음'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 아이들이 소풍이며 운동회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는 날이 와서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민정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