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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좀비에 주목하는 이유

2020-08-04기사 편집 2020-08-04 07: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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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좀비가 창궐하고 있다. 감염된 자들이 거리를 누비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여럿이 모이면 위험하다. 흩어지고 숨어서 자발적으로 고립되어야 살아남는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이웃이, 동료가, 심지어 식구들까지 누구라도 전파자가 된다.

물론 이는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좀비는 장르서사 속 상상의 괴물이지만, 관객들은 그 모습에서 시대를 읽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극장가에서 그나마 많은 관객과 만난 작품이 조일형 감독의 <#살아있다>와 연상호 감독의 <반도>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을 그렸다. 이런 설정 자체가 우선 주목된다. 괴물은 공포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로 귀신,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등은 이미 익숙하다. 반면 좀비는 아직 낯설다. 처음 부두교 전설을 영화에 도입했을 때 좀비는 그저 주술사에 의해 '되살아난 시체'에 불과했다. 기괴했지만, 여타 괴물에 비하면 위력이 약했다.

그러다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좀비 시리즈가 발표되면서, 무차별적 공격성을 가진 괴물로 재조명된다. 이후 문화콘텐츠 여러 영역에서 좀비를 내세운 작품들이 다수 발표되면서 좀비 캐릭터가 변한다.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감염력은 높아지며, 다양한 변종이 등장한다.

이들 작품에서 좀비가 두려운 이유는 '집단성'이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비이성적 감염체들. 여러 연구자가 이를 현대사회의 집단주의로 해석한다. 같은 관점에서 최근 작품들도 설명할 수 있다. 발생 원인이야 작품마다 다르지만, 좀비 무리가 걷잡을 수없이 퍼져나가는 양상은 대체로 사회적 의미가 반영된다.

<#살아있다>에서 인간과 좀비의 경계는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집안에 틀어박힌 주인공 청년은 살아남는다. 반면 밖으로 나가 어울린 이들은 좀비로 변했다. 한탄에 빠진 주인공이 술에 취해 해롱거릴 때, 좀비로 변한 이들은 그 와중에도 소임을 다한다. 소외되지 않으려면 좀비가 되어야 하고, 좀비가 성실할수록 세상은 위험해진다. 이런 설정은 청년세대의 소외 현상과 신자유주의의 가혹한 노동환경을 반영한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에서 가장 잔혹한 캐릭터는 좀비가 아니라, 청년을 속여 좀비로 변한 아내의 먹이로 던져준 인간이다.

반면 <반도>에서는 세대론이 강조된다. 한반도 전역에서 좀비가 창궐한다는 설정은 한동안 유행했던 '헬조선' 인식과 다르지 않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노인은 무력하게 기약 없는 구조만 기다린다. 기성세대는 죄업을 뒤집어쓴 채 생존과 쾌락에 몰두한다. 오히려 청년과 아이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질주한다. 생존자를 버려버린 기성세대와 끝까지 구하려는 청년세대. 이 차이는 다소 노골적인 반복과 대사를 통해 강조되지만, 그런 까닭에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된다. 아무리 참혹한 세상이라도,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작품의 성취에 대해서는 검토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좀비를 다룬 두 작품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상황만큼은 주목된다. 문화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니 이들 작품은 결국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고민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좀비에 주목받는 이유다. 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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