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문승현 기자
취재2부 문승현 기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좍좍 장대비가 나린다. 비는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마감도 하기 전에 마음은 벌써 어느 주점에 가 있다. 회사명 들어간 교차로를 건너자마자 술밥 집이 즐비한데 사람 들어찬 곳은 많지 않다. 조그만 커피숍은 문을 닫았고 옮기는 발걸음마다 `점포 임대` 현수막이 차인다. 한때 네온사인 휘황하던 월평동 마사회 골목의 현주소다. "이것도 잡숴봐." 일흔 넘은 할매 사장이 투박한 접시에 복숭아를 내온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얼굴 까먹겠다"며 살가운 말도 건넨다. 제일 비싼 안주가 1만 5000원인 아늑한 가게에서 소주를 마시는 동안 단지 세 무리가 왔다 갔다. 날이 저물수록 거리의 명암은 도드라진다. 한 건물은 층마다 불 켜진 곳이 없고 밥집은 슬슬 장사를 접으려 하고 술집 점주들은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고 앉았다.

"조만간 경마장 없어진다는데…지금도 죽 쑤고 있지만 이 상권도 곧 무너지겠죠." 2차로 찾아간 허름한 술집 사장은 밑반찬을 깔며 중얼거렸다. 주인장 넋두리에 술이 쓰다. 대전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는 1999년 월평동 계룡건설 옛 사옥에 세 들어 영업을 시작했다. 계룡건설이 2014년 탄방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한국마사회가 건물을 통째로 사들였다. 이 시기부터 교육·주거환경 악화 등을 호소하는 움직임이 일며 정치권으로 시설 폐쇄·이전 논의가 확대됐고 2017년 5월 대선공약으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마사회는 내년 3월 화상경마장 폐쇄를 앞두고 8월 중 건물 처분방안을 확정한다. 경마 건전화 정책과 코로나19 여파로 적자를 내고 있는 마사회는 공개입찰 매각을 비중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 값은 400억 원 안팎이다. 개장 후 21년 동안 대전에서 수 조 원대 매출을 올린 마사회는 건물 기부채납 같은 사회공헌에 인색하고, 마사회로부터 레저세(시세) 3300억 원을 거둬들인 대전시는 지역경제 붕괴를 막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외면한 채 건물 매입에 소극적이다. 비는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을 것 같은 월평동에서의 호젓한 이 밤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취재2부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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