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왕정(王政)에서 군왕은 권력을 독점하고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미명아래 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우리 체제는 삼권(三權)의 견제, 균형을 통해 권력을 분산한다. 공화정은 한 인간이나 집단에 신비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과도한 인사권을 줘 권력이 사유화될 가능성은 크다. 정치인이 야권에 있을 경우 이를 문제시 하지만 권력만 쥐면 곧 중독된다. 문재인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년 돌아보고 헌법 가치의 측면에서 `대법원`과 `선거관리위원회`를 생각한다.

영어로 대법관을 `Justice`라 한다. 말 그대로 정의(正義)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란 말로 받아쳤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 권력이 판사를 눌러도 법과 양심에 따라 올곧은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법원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폄하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방통위 제재, 조국 전 장관 운동권 `절친`인 성남시장 은수미 정치자금법 위반, 여권 차기 주자 이재명 경기도 지사 허위사실 공표의 원심들을 모두 파기환송(破棄還送)했다. 특히 이 지사 대법원 판결문은 법 지식 부족한 일반인이 읽어도 상식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임명을 앞 둔 대법관 후보 중 국보법 위반자가 유력하다. 세간에서는 특정 이념에 경도된 `우리법 연구회`와 `민변` 출신들이 대법원을 장악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대법원이 이렇게 돌아가니 사법부가 정치판으로 변하고 있단 탄식도 나온다. 어떤 판사는 대놓고 "재판은 곧 정치"라고 말한다.

헌법기관 중 `선거관리위원회`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 대한 선거부정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 139 군데에서 선거관련소송이 접수되는 등 역대 선거 사상 최악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앙선관위는 납득할만한 설명이나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 국민적 의혹만 시간이 감에 따라 증폭되고 있다. 그나마 5월 28일 중앙선관위가 해명을 위해 개최한 `시연회`에서 보인 권위적 태도는 지금이 1980년대 군사독재 시기인지 여기가 중국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방통행 식 진행에 항의하던 기자가 퇴장하기까지 하였다. 최근에는 중앙선관위 폐기물에서 민간인 통화내역과 소송단 변호사가 움직인 동선(動線)이 적힌 내부 보고서가 나왔다. 이는 선관위가 민간인들을 영장 없이 사찰하지 않았는가는 의심을 사는 증거일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해명에서 거론된 특별사전투표소나 동일한 QR코드가 나온 2개의 투표지 모두 관련법을 위반한 것일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이런 배짱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혼란의 배경은 중립적이어야 할 헌법기관의 수장 자리를 소위 `대통령 사람들`이 독식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법원장은 `우리법 연구회` 회장을 역임 하였고 야당은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이라 주장한다. 특정 선거 캠프 출신에게 선거관리를 맡기는 것은 정상국가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만 행사해야 하는 헌법기관의 장(長)들이 헌법가치는 수호하지 않고 자기 정치집단을 위해 복무한다면 마땅히 사임하고 붕당(朋黨)의 이익을 쫒아 정계에 입문하는 것이 옳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 사람 심는 방식으로 정치적 방탄조끼를 입고 안전하기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패거리의 안위만 도모했던 집단들이 과거 어떻게 종말을 맞이했는지 역사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소위 586 운동권 언저리에 있는 정치인들은 신비한 절대 가치를 독점한 무소불위(無所不爲) 집단이 아니다. 특정 정파가 절대자와 절대가치를 지향하고 헌법까지 입맛에 맞게 바꾼다면 그곳은 민주 공화국이 더 이상 아니다. 또한 1987년 개헌을 위해 산화한 열사들을 위한 예의도 최소한 아닐 것이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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