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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칼럼]기다림

2020-07-28기사 편집 2020-07-28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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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홍민정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외상중환자실 파트장
며칠 동안 장맛비가 주룩주룩, 물 폭탄이 떨어지는 듯 내렸다. 아마도 지난 몇 년 간은 마른 장마가 이어졌던 것 같은데, 햇빛으로 달궈진 도시의 건물과 나무들의 푸르름을 짓누르며 모든 걸 씻어내려는 듯 내리는 비가 시원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비온 뒤 하루 반짝 화창했던 어느 날, 저 멀리 보이는 평안한 풍경을 기대하며 오늘도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기다림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1996년, 간호사 국가고시 응시 후 실습간호사로 일하면서 발표 날 자정이 지나기를 기다렸던 때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수시로 시계바늘을 확인하며 시계 속 바늘 세 개가 '12'를 가리키기만 기다렸다.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고, 통화중 신호만 반복되었다가 힘겹게 연결이 됐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합격하셨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 음성메시지를 듣기 전까지의 기다림, 듣고 난 후의 희열은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또 결혼 후 엄마가 되기 위해 10개월 동안 뱃속의 아이와 교감하던 때의 기다림이 생각난다.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엄마를 닮았을까? 혹은 아빠를 닮았을까? 등 수만 가지의 궁금증과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건강히 태어나기만을 바랐던 출산 당일, 힘겨운 진통 속에서도 나의 '분신 탄생'에 대한 기다림은 그 어떤 기다림보다도 애가 탔으며 또 경이로웠다.

나의 삶터인 병원에서도 순간순간 기다림이 존재한다. 환자들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상해로 병원을 찾게 된다.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프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두들 잘 알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병원을 찾는 순간은 갑작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는 모두가 '건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좀 더 활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도 하고 예방도 하며 지낸다. 하지만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저마다 다양하고도 복잡한 진단을 받고 치료받으며 지치고 힘들어 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마 환자들은 아프지 않고 편안히 생활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특히 중환자실에 있다 보면, 임종을 앞두고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소생하기만을 바라는 많은 가족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가족들은 단 1% 가능성이라도 희망을 걸며, 건강을 찾게 되길 바라고 기다릴 것이다. 그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의사의 진료와 치료, 간호사의 따뜻한 간호, 가족의 지지와 관심을 받고 병마와 싸워 이기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크게 상해를 입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환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외롭게 입원치료를 받으며 가족들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환자, 각종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 통증이 심해 약물치료 시간을 기다리는 환자 등… 이렇게 여러 가지 순간 속에서 기다림을 마주하게 되며, 간절한 마음은 모두 다 크다.

한 파트의 '장(長)'인 만큼, 후배들을 차분히 기다려주고 있기도 하다. 중환자실의 가족이 된 신규간호사들이 업무에 잘 적응하고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하루하루 간호 경험이 쌓여 베테랑 간호사로 거듭나기를 기다린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배로서 관심과 배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신규간호사들이 점차 어엿한 전문 간호사로 성장 할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병원이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가 가장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퇴근시간'이 아닐까? 근무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간호하고, 힘들고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다독여줄 나의 집으로 가는 시간. 그 시간을 오늘도 기다려본다.

홍민정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외상중환자실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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