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음악을 통해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충남도교육청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건영(46)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질문들이 결국 아이들의 가치관과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

늦은 나이에 타국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교육의 중요성도 그가 도교육청 홍보대사를 맡은 이유 중 하나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에 대한 철학과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 더 일찍 이러한 교육을 받았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통제된 삶보다는 다양한 교육기회를 누리며 행복에 대해 통찰하길 바랍니다."

정 교수는 예산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청년기를 보내다 예산고등학교 입학식 날 처음 음악을 접했다.

"선배들의 권유에 트럼본과 트럼펫을 불어봤는데 제대로 연주할 수가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타악기인 마림바 연주에 도전했는데 선배가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타악기 연주를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은 세한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서울드럼페스티벌과 서해안 국제뮤직페스타 등을 준비하며 비브라폰의 거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그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시련이 찾아왔다.

지방 출신에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던 그는 국내에서 음악을 계속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평소 알던 타악기 연주자의 추천으로 오스트리아 린츠로 향했다.

무작정 향한 타지 생활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린츠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돼 가진 돈을 전부 사기당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중국식당 주방에서 하루 종일 접시를 닦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고된 노동에 지쳐 악기 연주 연습을 할 수 없어서 음악인의 꿈은 점차 멀어져 갔으며 설상가상으로 무비자 기간이 끝나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그러던 중 비엔나 소재 한인교회 교인의 권유로 빈 국립음대 입학시험을 치렀고 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빈 국립음대 입학은 행운인 동시에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2,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배로 연습해야만 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끝에 2004년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후 동양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프라이너콘서바토리 음악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충남의 소외된 지역 위주로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음악 체험 기회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김성준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김성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