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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언택트(untact) 시대, 접촉과 접속

2020-07-22기사 편집 2020-07-22 07: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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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1997년 개봉한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은 PC통신이란 새로운 문화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영화에서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남녀 주인공은 천리안과 하이텔이라는 1세대 PC통신 사이트를 통해 접속하고 교류하고 연애까지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각각 자신의 이력과 삶을 공유하는 주변인이 있지만 그 관계에서 공허를 느낄 뿐이다. 오랜 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도, 새로운 동료와 술을 먹고 밤늦은 거리를 걸어도, 그들 각자의 아픔은 토로되지도 위로받지도 못한다. 그들 내면의 아픔과 공허를 위로하고 채우는 것은, 접촉하는 주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접속하는 이방인과의 관계이다.

접촉(接觸)과 접속(接續). 관계에서 '맞붙어 닿음'(접촉)과 '맞대어 이음'(접속)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란 육체의 온기와 부피, 즉 존재감일 것이다. 접촉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직업이나 이름을 알고 성격과 가치관, 취미와 목표, 이해관계를 알아가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일상 속 가족, 친구, 선후배와 동료들은 모두 원근의 차이는 있지만 일정한 접촉관계를 구성하는 대상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맞닿은 그들의 체온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주변을 감도는 그들의 존재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때때로 육체의 온기와 부피는 접촉관계의 일그러진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접촉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우정과 사랑에 기반한 친밀한 집단을 형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계에 의한 추행이라든지 친밀함을 빙자한 부패와 일탈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경상도 식으로 말해 '우리가 남이가'의 정서가 접촉관계를 둘러싸면서, 접촉한 대상의 온기는 때로 불쾌한 것이 되기도 하고 대면한 대상의 부피가 때로 위압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직접 대면하는 접촉보다 장치에 의존하는 접속으로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무선 인터넷망을 통해 언제든 타인과 접속 가능한 현실에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오늘날 소통의 중심에 서 있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를 통한 접속은 익명의 타인 간 소통을 넘어 주변인과의 접촉을 보완하는 측면까지 갖는다. 오늘날 우리는 만인 접속, 상시 접속의 사회, 접속으로 하나 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종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2020년의 현실은 상시 접속과 만인 접속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도, 회의도, 수업도, 식사 주문도 비대면, 비접촉을 요구하는 시대. 나아가 어르신의 꽃놀이나 청년의 유흥, 가족여행이나 퇴근길 술자리조차 비난 대상이 되는 강요된 언택트의 시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접촉은 위계에 의한 추행이나 친밀감을 빙자한 일탈을 넘어 바이러스를 전파해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행위로서 부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만인 접속의 사회, 상시 접속의 현실에서 역으로 접속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나 실시간 온라인 회의에서 느끼는 불편이란 사람 간 소통에서 일상 접속이 대면 접촉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다.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 남녀는 주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면의 아픔을 토로하고 서로에게 공감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방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름과 나이, 얼굴을 알아야 하며 서로에게 육체의 온기와 부피를 부여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들은 직접 대면함으로써 연애의 시작을 알린다.

접속으로 만난 타인에게 접촉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기대고 싶은 어깨이고, 안기고 싶은 가슴이며 함께 걷고 싶은 다리이자 맞잡아 주는 손이다. 언택트의 시대,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깝게'를 구현하기 위해서 다음 세대의 접속 도구는, 어떻게 접촉을 그 속에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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