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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장마와 기다림

2020-07-21기사 편집 2020-07-21 0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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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철이다. 그나마 마스크 속에 가려져 더욱 답답하기만 한 일상이다. 새벽 창을 열고 깊은숨을 들이켜본다. 아직은 큰비 오기 전이라 그런지 먼지잼에 젖어 드는 바깥 풍경이 고즈넉하게만 느껴진다. 물기 머금은 바람에 실려 오는 살아있음의 생생한 냄새들이 눈물겹다. 촉촉이 적셔진 이파리들이 품어내는 초록의 냄새, 멀리 희부연 도로 위를 달리는 운전자들의 활력의 냄새, 길 건너 주택가 초록빛 옥상에 펼쳐진 야외놀이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일가족의 다정한 냄새,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소박한 냄새들이 곳곳에 있어서 그래도 숨 쉴만한 세상이라고 위로해 본다.

어릴 때는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집안에 박혀있어야 하는 장마철은 참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한낮인데도 거센 빗줄기가 짙은 어둠을 몰고 오면 왠지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해서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엄마는 동생을 품에 안고 둥그렇게 몸을 말은 채 빗소리를 뒤로하며 잠을 청했고 나는 혼자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온종일 그칠 기미 없이 퍼붓던 장대비가 문득 그치고 반짝 햇살이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 소란하던 사위가 거짓말처럼 정적에 들었다. 쏘듯이 빛나던 태양과 장독대 뚜껑에 반짝이던 물무늬, 그렇게 여름의 허리를 칭칭 휘감던 장마가 지나가면 어김없이 신나는 방학이 다시 돌아오곤 했다.

올여름은 한 학기 내내 비대면 화상 강의라는 생소한 환경과 씨름을 했다. 기계와 그다지 가깝지 못한 나는 느닷없는 문화충격에 당황하며 한 학기를 꾸려야 했다. 학생들도 새로운 강의 방식에 어려움을 겪은 건 매한가지였다. 늦춰진 개강에 차일피일 일정이 변경되며 혼돈의 시간이 당황스럽게 펼쳐졌다. 과민하다 보니 어느새 몸도 지쳐 허리까지 우지끈했다. 특히 신입생의 경우는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크기도 해서 비대면 수업이라는 복병 앞에 실망감은 더욱 크게 느껴졌던 터이다. 그 과정 가운데 가장 염려한 건 학생들이 배워야 할 분량과 도달해야 할 학습목표의 일치였다.

결국 요체는 소통이었다. 차가운 기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대하는 것, 그것도 타자의 시선이 머무르는 모니터 안에서 자신의 잔상을 남기는 수업 방식은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따스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수행해야 하는 학습 과정은 충실해야 했다. 몇 시간 안 되는 강의를 위해 그 몇 배의 준비가 필요했다. 강의실에서 만나던 때보다 더 열정을 기울여 음성을 보내고, 학생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던 한 학기가 무사히 끝나고, 객관적으로 만족한 지표를 얻은 결과에 잠깐의 기쁨을 누린다. 만나지 못하는 강의실 밖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한 풋풋한 청춘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우기가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가 온통 지루함과 끈적임을 동반하고 엄습해와도 어느 순간 그치는 시간이 오는 것처럼 잠깐의 어려움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기다림이다. 숨겨진 태양이 밝게 드러나는 환희, 어두움이 물러갈 때 선물처럼 다가오는 그 빛은 기다림의 열매이다. 2020년을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이 언제 그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나날이다. 어떤 환경이 우리 앞에 돌출할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간 속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현명한 기다림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불편을 감수하는 가운데, 우리의 집단지성은 분명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리라 믿는다.

홍인숙 대전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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