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이시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코로나19 장기화는 생활의 다양한 변화를 불러왔다. 마스크를 써야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모임을 꺼려하는 사람들의 모습, 줄어든 사회활동, 은행 창구에 세워진 투명스크린,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모습은 새로운 일상(new normal·뉴노멀)이 될 거라는 전망이 계속되고 있다.

대유행 초기, 우리는 두 가지 큰 걱정에 시달렸다.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와 확진 시 공개될 동선에 수반된 불안감이다.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변화된 일상들이 개인에게 미치는 불안과 우울, 이른바 `코로나 블루`가 엄습하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4월 수행한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47.5%가 불안,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4월과 6월 사이 경상남도에서 수행한 `경남도민 정신건강조사`에서는 79.7%가 정서적 불안감을, 38.8%는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우리의 방역체계는 빠른 검사와 IT 기술을 이용한 확진자 추적으로 세계에서 주목하는 `K-방역`으로 그 위업을 달성했다. 사실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수준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이고, 국민들의 보건의료 이용률과 병상수도 우수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정신건강 문제로 들어가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매년 하위권에 속해 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정신질환의 진료인원은 302만 명에 이르며 우울, 불안 등 주요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25.4%에 달한다. 게다가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점하고 있다(2018년 기준 10만 명 당 26.6명). 장기화된 코로나19 상황과 그 이후에 드러날 정신건강문제는 현재보다 훨씬 무겁게 우리 사회에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의학의 정신건강관은 인체를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고려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정체(整體)로 여긴다. 이에 따르면, 몸 또는 마음 한 쪽의 병리적인 변화는 나머지 다른 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의학 정신치료의 기본원리로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이 언급된다. 이는 인체의 미세한 기운(精)을 움직여 심리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몸과 칠정(七情)으로 요약되는 심리현상을 연결시켜 오행과 칠정의 상생상극에 따라 한약, 침구요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비대면 시대가 뉴노멀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한의학 기반의 `명상요법`과 정신과 분야에서 응용되는 `인지행동치료`들이 속속 앱(App)과 VR·AR 시스템으로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신호 빅데이터를 활용해 체질을 예측하는 것은 물론 우울, 불안 등 정신질환의 기전을 규명하고, 체질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치료방법을 마련하기도 한다. 점차 정신과 전문의의 전문성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치료에서 정량적 바이오마커와 디지털 치료를 활용하는 디지털 정신건강관리의 시대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몇 가지 법률적 제한이 있긴 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쪽으로 제도의 변경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의학 기반의 디지털 정신건강관리는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적잖은 부분들이 이미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질환중점센터도 등장했다. 디지털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핵심 요소 분야들이 서로 융합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이 지원된다면, 가장 빠른 시일 내로 임상실증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고, 2025년에는 87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디지털 정신건강관리 분야는 한·양방 전문가 네트워크와 최첨단 IT-BT 기술이 확보된 우리나라가 앞장 설 수 있다. 이시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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