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문학과지성사/ 360쪽/ 1만 5000원)
소설은 어느 날 프랑스에서 가스통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의 청년이 일본에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스통은 나폴레옹의 후손이라는 사실로 일본에 도착하기 전 그를 기다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실제로 만나고 나자 볼품없는 용모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버려진 불쌍한 개 한 마리에게도 말을 걸어 친구로 삼는 성정을 가진 가스통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살인 청부업자 엔도를 따라나서게 되고, 엔도의 복수극에 휘말리고 만다. 가스통은 화해와 용서를 호소하다 결국 사건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흉기를 맞고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의 유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고,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으며 싸움과 미움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사랑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리라고 믿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 세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그리고자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연상시킨다. 작가 역시 `도스토옙스키와 나`라는 글에서 "나의 이상적 인물을 그린 작품에 `백치`로부터 힌트를 얻은 `바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보`의 원제목 `오바카상`은 바보를 의미하는 일본어 `바카`에 존칭어인 `오`와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상`을 붙인 것이다. 바보라는 명칭에는 애정과 안쓰러움, 어떤 면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세상의 작태를 은연중에 비판하는 의미가 혼재돼 있다. 작품 안에 줄곧 가스통을 무시했던 도모에가 살인 청부업자 엔도와 함께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떠나는 가스통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그의 본질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도모에가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고 한 것에서 바보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내어주는 `바보로서의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작가 특유의 유머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와 함께 `침묵`이나 `예수의 생애`와 같은 무게감 있는 작품으로 엔도 슈사쿠를 기억하는 국내의 독자에게 그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나아가 종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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