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문학과지성사/ 360쪽/ 1만 5000원)

바보
바보
소설 `침묵`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엔도 슈사쿠의 `바보`가 대산세계문학총서 159번으로 출간됐다. 작품은 1959년 3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아사히신문` 도쿄판 석간에 연재했던 신문소설이다. 소설은 종교와 신앙에 무관심한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와 신앙의 본령을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특정 교리를 무모하게 강요함으로써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 익명의 존재로 숨어서 활동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 소설가로서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가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하다. 작품에서는 특정 종교의 신조나 전통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호교문학`의 틀을 벗어나, 신앙의 현실과 일상적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후자를 비하하려는 경향을 지니기 쉬운 종교인들에게 신앙과 종교의 가능성,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초월적 존재의 가능성을 묻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특히, 작가는 일본인으로서 서구 기독교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철저히 해부하려는 작업을 뛰어넘어 정말로 실감하는 예수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평범한 일상성 속에서 작용하는 신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소설은 어느 날 프랑스에서 가스통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의 청년이 일본에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스통은 나폴레옹의 후손이라는 사실로 일본에 도착하기 전 그를 기다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실제로 만나고 나자 볼품없는 용모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버려진 불쌍한 개 한 마리에게도 말을 걸어 친구로 삼는 성정을 가진 가스통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살인 청부업자 엔도를 따라나서게 되고, 엔도의 복수극에 휘말리고 만다. 가스통은 화해와 용서를 호소하다 결국 사건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흉기를 맞고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의 유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고,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으며 싸움과 미움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사랑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리라고 믿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 세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그리고자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연상시킨다. 작가 역시 `도스토옙스키와 나`라는 글에서 "나의 이상적 인물을 그린 작품에 `백치`로부터 힌트를 얻은 `바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보`의 원제목 `오바카상`은 바보를 의미하는 일본어 `바카`에 존칭어인 `오`와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상`을 붙인 것이다. 바보라는 명칭에는 애정과 안쓰러움, 어떤 면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세상의 작태를 은연중에 비판하는 의미가 혼재돼 있다. 작품 안에 줄곧 가스통을 무시했던 도모에가 살인 청부업자 엔도와 함께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떠나는 가스통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그의 본질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도모에가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고 한 것에서 바보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내어주는 `바보로서의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작가 특유의 유머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와 함께 `침묵`이나 `예수의 생애`와 같은 무게감 있는 작품으로 엔도 슈사쿠를 기억하는 국내의 독자에게 그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나아가 종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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