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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내리는 장대동

2020-07-15기사 편집 2020-07-15 07:05:21      문승현 기자 starrykite@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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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취재2부 문승현 기자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가던 그날 밤을 선생께선 잊지 못할 것이다. 을미년(고종 32·1895년) 8월 조선의 국모를 무참히 시해한 대변(大變)에 토왜(討倭)의 기치를 들고 떨쳐 일어선 문석봉(文錫鳳) 선생은 한달 후인 9월 18일 유성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 봉기를 폭발적으로 촉진한 을미의병의 효시 '유성의병'이다. 유성의병장 문석봉은 회덕현 무기고를 털어 의진을 무장하고 진잠, 공암을 거쳐 공주로 향했다. 공주부 관아는 유성의병의 첫 진격지였다. 문석봉의 의진은 공주 와야동(현 소학동)에서 관군과 맞붙었으나 패했다. 매복과 관군-왜 연합을 넘지 못했다. 경북 현풍군(현 경북 달성군 현풍면 상동리) 출신 무인이자 문인인 문석봉은 패퇴 후 고향으로 내려가 고령 초계 등지에서 재봉기를 준비하다 고령현감의 밀고로 그해 11월 체포돼 대구 감옥에 구금된다. 이듬해인 1896년 파옥·탈출해 전국 의진과 접촉하며 거듭 일어서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했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46세.

유성의병의 거점이었던 대전 유성구 장대동 유성시장 내 장터공원에 '유성의병사적비'가 모셔져 있다. 유성5일장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6월 24일부터 이달 9일까지 문을 닫았다가 14일 재개장했다. 유성장터의 비릿한 생선 냄새와 제철과일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공원에 들어가 사적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유성의진 결성으로부터 109년이 지난 2004년 9월 18일 진동규 유성구청장 시절 세워진 사적비에는 '장대동은 대전 일대 사민(士民)들이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역사적 현장이다. 의병의 사적을 후세에 알려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고 써있다. 대전·세종·충남을 분기하는 장대동의 편리한 교통망과 인근 유성나들목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드는 유성장터 그리고 같은 길을 따라 왜를 토벌하려던 진잠현감 문석봉의 유성의병을 떠올리면서 '큰 장터' 장대(場垈)의 한복판에 평면의 네모난 신호교차로를 놓아 맥을 끊는 게 옳은 것인지 비내리는 장터공원에서 묻고 싶었다. 취재2부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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