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틀린 것은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것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즉, 기준이나 규정에는 맞지만 왠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경우다. 올 초부터 우리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아마 코로나19일 것이다. 이 단어와 함께 한동안 따라다니던 단어가 `우한`이다. 처음 우한이라는 지명을 듣고 금방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한은 중국 중부의 대도시인 무한(武漢)의 외래어 표기다. 필자에게는 `무한`이 익숙하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자주 등장해 익숙해진 도시니까. 이 `무한`을 언론에서 `우한`으로 표기하는 것은 현재의 어문규정에 맞다. 그런데 왜 불편할까. 우리는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고, 오래도록 익숙해진 우리식의 한자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식 한자음으로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청나라 초기 수도인 심양의 유물을 국내에서 전시한 일이 있다. 심양 고궁박물원 소장품 전시였다. 전시 제목이 `청 황실의 아침, ○○ 고궁` 이었다. ○○에 들어갈 말은 당연히 `심양(沈陽)`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한글 표기를 `심양`으로 할 것인가 `선양`으로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어문규정대로라면 선양이다. 그런데 왠지 어색하다. 아니 익숙하지 않다. 인천공항에서 항공기 출·도착 전광판에서 이 선양(Shenyang)이란 단어를 본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주변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역시 `심양`이 익숙하다고 한다. 결국 `심양 고궁`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박물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관장)였던 필자의 주장에 직원들이 동의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어문규정에는 이미 익숙해진 (중국)지명은 기존의 표기를 같이 쓸 수 있는 예외를 두고 있다. 따라서 심양이라고 표기해도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긴 하다.

이런 불편한 상황은 국제결혼을 한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국내 출생신고 시에도 발생한다고 한다. 중국 국적인 부(모)의 성을 따라 아이의 성명을 신고할 경우 현지음을 따라야 해서 진(陳)씨는 `천`으로, 가(可)씨는 `커`로, 오(吳)씨는 `우`가 된다. 경우에 따라 다른 성으로 둔갑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음으로 등록되는 불편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나 문자, 기호는 약속이다. 특정 언어를 다른 나라 말로 정확히 옮길 수는 없다. 그러니 규칙을 만들어 가장 비슷하고 편리하게 표기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주된 고려사항은 사용자의 입장과 편의성이다. 다른 외국어와 달리 중국어의 경우 같은 발음이라도 성조(聲調)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한이라는 단어를 성조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가 말하는대로 발음한다면 중국사람들이 바로 알아듣기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武漢`을 무한이 아닌 우한으로 표기하는 방식은 누구의 입장을 고려한 것일까. 우한의 공식 영문표기는 `Wuhan` 이다. 그런데 `우한`을 한글 로마자 표기법으로 하면 `Uhan` 이다. 사용 주체인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어색하고, 해당 원어민에게도 이해가 쉽지 않고, 알파벳 표기에도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틀린 것은 아닌데 왠지 어색하고 불편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사람도 그러리라.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이 분명 틀리지는 않지만, 왠지 거북하고 불편한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을 본다면, 비록 그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니라도, 왠지 불편하고 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만드는 상황과 틀은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마도 위정자 및 공직자에게는 더욱 절실한 덕목일 것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이유로 불편한 사람은 아닌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한번 쯤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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