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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과학기술과 원자력, 그리고 대전

2020-07-07기사 편집 2020-07-07 0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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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
대전은 1987년 젊은 청년이었던 내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과학기술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이며, 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새롭게 정을 붙이고 살고 있는 제2의 고향이다. 내 삶과 늘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1987년 내가 처음 발 딛은 대전과 2020년 오늘의 대전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대전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구개발특구에 모여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대전 발전의 큰 원동력이었다고 자부한다.

원자력연구원에 몸을 담은 이후 나는 국가적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관련 분야에서 30년 넘게 꾸준히 일하고 있다. 1987년 국내 최초 사용후핵연료 수송에 참여한 이래 사용후핵연료 수송용기를 비롯한 관련 장치와 핵주기시설의 설계, 안전성 평가업무를 수행해왔다. 직접 설계한 기계장치나 시설이 현장에서 잘 구현되고 원했던 성능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과학기술자로서 큰 기쁨이다. 다양한 직업들 중에서도 국가연구기관의 과학기술자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함께 가진다. 특히 원자력 분야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훨씬 커졌다. 이에 비례해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원자력 연구자들의 책임감과 중압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나는 압박감의 근원이자 성장 동력인 특별한 경험이 있다. 신입 직원 시절, 수많은 장치를 설계한 경험 많은 뛰어난 선배가 단순한 수치 착오로 많은 참관인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모습을 목도한 적이 있다. 평소 우러러보던 선배였던 만큼 큰 충격이었다. 다른 일을 잘 마무리하더라도 실수가 하나 있으면 그 실수가 전체 성과를 망치는 것은 물론 조직의 신뢰성까지 잃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다른 하나는 1989년부터 1995년까지 6년 동안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소내수송 사업에 참여해 저장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른 고리 1호기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한 경험이다. 실험실의 작은 장치가 아닌 가동 중인 대형 원전에 내가 설계한 장치가 사용된 것은 보람찬 경험이다. 하지만 그 보다 장치 설계에서 시작해 현장의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고, 규정과 절차를 따르며 인허가 기관의 검사를 받고 마무리되는 전체 과정을 겪어본 것이다. 연구자가 장치 개발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의 운용까지 직접 확인하는 것은 물론 여러 기관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까지 경험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에는 비록 너무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성장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으니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장치나 시설을 설계할 때는 정상적인 상황만 생각해선 안 된다. 고장이나 사고 시에 대한 대응방안, 그리고 이 대응방안도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대응방안까지 겹겹이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경향이 직업병에 이르렀다. 때로는 빨리 은퇴해 지속되는 과도한 긴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원자력 분야는 실제적인 안전과 함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원자력연구원은 최근 대전 시민의 신뢰를 잃을만한 일련의 사건을 겪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안전성을 강화하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아무리 연구를 열심히 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다 해도,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 함께 하는 시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그 실수가 나머지 성과의 빛을 바래게 하고 조직의 신뢰까지 무너뜨린다. 너무나도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대전 시민의 신뢰도 되찾고, 국가에 필요한 원자력 연구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당면한 과제이다. 특히 우리 잘못으로 신뢰를 잃었기에 자업자득이란 생각으로 철저히 반성하고 안전성을 강화하고,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청춘을 바친 원자력의 신뢰도 되찾고, 장차 자랑스레 은퇴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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