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에 `별들의 침묵`이라는 시가 나온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부시맨들이, 백인 인류학자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하자, 그를 아픈 사람처럼 보면서 참으로 안 된 일이라고,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산업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 인류의 오감은 감각에 따라 발달하거나 쇠퇴하기도 해왔다. 숲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은 건 우리의 감각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숲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 긍정적 정서감이나 뇌파의 알파파가 증가한다.

숲속의 소리는 도심에서 나는 소리에 비해 주파수가 고르게 분포하고 있어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숲 교육이나 숲 치유 프로그램에 중요 항목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부시맨들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오감이 충분히 발달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도 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숲에 들어가서도 풀과 나무, 동물과 여러 환경 인자를 알면 어느 정도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

아는 것의 첫 단계로 우리는 이름을 기억한다. 사물의 이름은 그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짓다 보니 사물의 속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로수로 많이 심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학술적 이름은 버즘나무다.

나무껍질이 얼굴에 나는 버즘(버짐의 방언)과 같은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반면 어떠한 사물의 이름은 그 사물을 진정 대표하지는 못한다.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여러 속성과 의미가 있을텐데 그 범위를 이름으로 한정시킬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즘나무는 버즘 같이 생긴 속성 이외에도 잎이 커서 먼지를 많이 흡착하고 시원한 그늘을 많이 제공해 준다. 잎이 크다 보니 간판을 가리고 겨울에는 낙엽 쓰는 일이 번거롭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식물을 알고 나서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무와 숲에 대한 깊은 사색을 거친 경우다.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한 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꽃, 나무와 숲을 알아가는 것은 철학적인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면, 숲의 가족들을 유심히 관찰해보기도 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들이 되어보기도 한다. 삶이 다하기 전 언젠가 한 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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