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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지혜

2020-06-26기사 편집 2020-06-26 07: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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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황지연 충남드론항공고 교사

"아무개야, 일어났니? 열은 어때? 기침은? 어서 준비하고 학교에서 보자."

이것은 출근 준비 시간의 루틴 같은 전화 통화다. 2년째 담임을 맡은 아이에게 작년부터 모닝콜을 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자가진단까지 겸하고 있다. 아침잠이 너무 많은 아이, 집에서 살갑게 깨워줄 어른이 없는 아이, 19살이나 된 학생에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주변의 핀잔 섞인 충고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3월까지만 해도 무뚝뚝하게 "몰라요"라고만 말했던 아이가 지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잘 웃기도 한다. 서서히 아이의 마음이 녹는 게 눈에 보인다. 지난 1월 말에는 갑자기 "선생님, 조심하세요"라며 앞뒤 없는 톡을 보냈기에 전화를 했더니 코로나19를 조심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 아이의 뜬금없는 마음 표현이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었다. 오늘은 계속 전화도 받지 않고 학교에도 오지 않고 있어서 애가 타지만 말이다.

"선생님, 저는 부끄럽지 않은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입니다. 고3 때 선생님을 만나 저는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저 같은 학생도 있다는 거 기억하시고 힘내세요."

올해 스승의 날 제자에게서 받은 메시지다. 전에 인문계고에서 고3 담임을 할 때 만난 아이였다. 고3 학생인데도 공부도 안 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졸리면 공부하기 어렵다며 야간자습 때는 찬 복도 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비록 몇 개월간의 공부로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그 몇 개월의 공부 습관이 경찰 시험을 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만나곤 하는데, 올해 그 아이가 보낸 메시지가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과연 내가 무엇을 했을까?"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니 내가 한 일은 그저 아이들과 함께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이 나로 인해 변했다고 한다.

정재찬 교수가 집필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보면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은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고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늘 마음에 새기는 문구다.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를 대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며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린다. 이걸 잘 못 해서 상처를 줬던 지난날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믿음과 지혜를 날마다 간구하고 기도한다.

어떤 아이든 자신만의 이유와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고2 학생 때 전학을 하게 되면서 마음을 못 잡기도 했고, 설상가상 고3 여름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다쳐 한 달 넘게 입원하면서 미래에 대해 좌절감도 깊었었다. 이른바 '모범생'으로 살지 못할 이유가 내 마음에 오억, 오조 개는 만들어졌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야 나는 '선생님'이 됐다. 내가 만난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줬고, 제자리걸음 같아도 손톱만큼씩 커가고 있는 자신을 보여줬으며,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나를 기다려줬고, 조금 지쳐 있을 때 선생님 덕분이라는 메시지로 나를 다시 일으켜줬다. 그래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의 이유를 찾아보는 선생님이 됐으며,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본다. 황지연 충남드론항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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