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게 그날따라 꼭 들어가 보고 싶더라고요." 대전 중구청 소속 박정호(49·사진) 대형폐기물 수거팀장은 두 달 전인 4월 14일 겪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박 팀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구역을 돌며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었다. 오후 4시쯤 이미 온갖 폐기물로 2.5t 트럭이 `만차`여서 마지막 코스인 중촌동 한 아파트를 건너뛸까 생각도 했다. 아파트 세대 수가 많지 않고 무엇보다 적재물을 더 실을 만한 공간이 없어서였다.

박 팀장은 "수거차량에 폐기물이 가득 쌓여서 안영동 폐기물선별장으로 그냥 들어갈까 했는데 중촌동 아파트가 유독 신경이 쓰였다"며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 `얼른 해치우고 가자` 하고 들어갔는데 그런 일이 생길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그날 덩치 큰 가구와 가전제품 등 대형폐기물 사이에서 작은 `목재박스`가 하나 보였다. 적재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목재박스를 부수었는데 문서를 보관하는 파일과 작은 쌈지가 나왔다. 주머니 안에서 목걸이와 반지 등 귀금속 여러 점을 발견한 박 팀장은 바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 이런 사실을 전달했다. 입주민 중 귀금속 주인이 있을 것이란 짐작에서였다.

수거작업을 마치고 선별장으로 향하는 길, 생각지도 않은 파일에서 편지봉투가 떨어지는데 자세히 보니 봉투 안에 현금이 들어있다. 15만-20만 원가량 되는 현금이 편지봉투에 담겼고 편지봉투는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박 팀장은 "편지봉투 하나에 든 돈이 평균 20만 원 정도였다. 그런 봉투가 파일첩에서 자꾸 나와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차를 돌려 인근 파출소로 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동네 파출소에서 경찰관 입회 아래 파일첩을 확인한 결과 현금은 500만 원가량이었다. 생각보다 현금 액수가 커 파출소에 들르길 잘 했다며 돌아가는데 이번엔 귀금속 주인이라며 문의전화가 와 귀금속과 함께 현금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알고 보니 귀금속과 현금은 최근 유명을 달리한 아파트 주민의 유품이었고 장례 후 정리과정에서 잘못 버려진 것이었다. "며칠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가 남편 유품 찾아줘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시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어쩐지 그날따라 그 아파트에 꼭 들어가고 싶었던 게 어쩌면 할아버지의 바람은 아니었는지…" 폐기물로 나온 유품이 임자한테 잘 돌아갔으니 그만이라는 박 팀장을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그의 증명사진을 한 장 받았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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