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도시재생은 이제 단지 낡은 곳을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그 도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톡홀름 하마비 허스타드, 뉴욕 하이라인 파크의 사례는 어느새 고전이 되었다. 단순히 건물 재생 수준 지역 살리기에 그치지 않고 `되살리기` 본질을 도시 안에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

학생들과 원도심 프로젝트를 이어가다 보니 필자는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이들 중 몇몇과는 뜻이 맞아 함께 도시 탐사를 하게 되었다. 한 지역의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시간 되는대로 다니는 중인데 초창기 방문한 두 곳이 인상에 남는다. 처음 찾은 곳은 일본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이와미긴잔 오모리 마을`이다. 지인을 통해 알고는 있었으나 워낙 산골이라 방문할 엄두를 못 내다가 우연히 돗토리현의 하야부사를 방문하게 되어 두 곳을 엮어서 가기로 했다.

오모리 마을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군겐도(群言堂) 본사가 있는 곳이다. 논길을 지나면 히로시마에서 옮겨온 전통가옥과 사무실이 나란히 있는 특별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곳으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인구가 줄어들던 마을에 160여 명의 일자리가 늘었다. 이는 젊은 시절 남편의 고향으로 들어와 이제 칠순을 넘긴 마쓰바 도미가 이룬 결과다. 재미 삼아 주민들과 패치워크로 시작한 일이 가게를 열고 옷을 짓고 음식을 내며 독특한 생활문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을 하나하나 사들여 만지고, 220년 된 무사의 집을 20여 년간 시간을 두고 되살려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방문객들과 식사를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다 보니 도시로 떠난 아이들도 돌아오고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두 번째 방문지는 홍콩 타이콴(大館)이다. 도심 한복판에 170년 역사의 경찰서 자리를 10여 년에 걸쳐 복원했다. 경찰서와 법원, 감옥이 한곳에 모여 있는 특성에 맞춰 박물관으로 되살리고 미술관과 종합예술관을 신축해 대규모 문화 단지를 조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홍콩 정부와 마사회가 함께 진행했는데 모든 비용은 마사회에서 부담했다고 한다. 이곳의 특징은 단지 `문화 시설`만 들인 게 아니라 유명 브랜드를 포함해 북스토어와 와인바, 레스토랑 등 상업 시설도 함께 구성했다는 점이다. 문화와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도 숍을 방문하다가 자연스레 시설 전체를 둘러보게 되는 구조다. 홍콩이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에서 문화 재생의 선도 지역으로 부상한 데는 타이콴의 콘텐츠를 복합적으로 구성한 점이 한몫했을 것이다.

이 두 곳은 관 주도 지원 사업에 몰려 결과물 내기에 급급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됐다는 점에서 닮았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주변을 오래 살피고 지역에 필요한 것을 채워간다는 뜻이다. 두 곳 모두 지역의 특성을 살린 콘텐츠로 구성했다는 점도 닮았다. 이미 있는 것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살펴 그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다른 점은 군겐도의 경우 개인의 의지와 역량이 동력이 되었고 타이콴은 지자체와 비영리 조직이 힘을 합쳐 일구어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옳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의지를 가진 주체가 흔들리지 않고 여건에 맞춰 차근차근 재생사업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이 도시로 눈길을 돌려보자. 대전 원도심에는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구 충남도청이 있고 철도 관사촌이 있다. 아직도 구 도청은 뚜렷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소제동 철도 관사촌도 투기 자본의 먹거리가 되고 있다. 구 시청 건물은 부동산 시장에서 길을 잃었다. 이런 모습이 시민들이 원하는 원도심의 미래인지 의문이 드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축적된 문화유산을 지녔음에도 참신한 콘텐츠를 담아내지 못하면 그저 낡고 오래된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원도심을 제대로 되살려 이 도시의 정체성을 살려 나갔으면 한다.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