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헌 논설실장
김시헌 논설실장
정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1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제사법위원장을 포함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등 21대 국회 상반기 원 구성의 막을 올리면서 비롯된 것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폭거라며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원내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아예 사의를 표하고 잠적했다. 이럴 바엔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에게 주겠다고도 한다. 힘으로는 밀리니 여론에 기대는 방법 밖에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고질병 같은 국회의 파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원 구성을 둘러싼 충돌은 예고됐던 일이다. 180석 거대여당의 출현으로 개헌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총선 압승 직후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야당의 발목잡기에 국정운영의 차질이 빚어졌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민주당이 21대 국회의 법사위원장 만큼은 기필코 차지하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의회 독재니, 헌정사 초유의 폭거니 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의지는 분명하다. 끝내 야당이 불응하면 나머지 원 구성도 강행하고 국회를 운영하겠다는 자세다. 19일 본회의가 D-데이다. 이렇게 되면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18개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하는 것은 물론 국회의장과 여당이 야당의 상임위원까지 강제 배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협상을 위해 야당 몫 7개 상임위원장은 공석으로 남겨놓을 가능성도 있지만 헌정사에 오점으로 기록되는 것만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런 국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비가 너무 오면 짚신장수 아들이,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장수 아들이 걱정이듯 국민들 입장에선 일하는 국회를 위해 여당에서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이 차지해야 한다는 말은 모두 설득력이 있다. 상황 변화와 관행을 앞세운 여야 주장도 그렇다. 정작 애가 타는 건 국민이건만 두 아들은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문제는 국회를 세워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와 북한발 안보 위협이 중첩된 상황에서 국회 가동은 시급하다. 당장 코로나 사태에 대비한 추경안 심사 등이 기다리고 있다. 북의 추가 도발 여부에 대한 대처도 해야 한다. 민주당이 일부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것도 야당 압박 외에 이런 절박한 상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법사위원장 등이 선출된 마당에 이를 되돌릴 수도 없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인 셈이다.

현 상황에서 관심을 끄는 건 통합당의 행보다. 선택지는 투쟁 또는 백기투항으로 좁아졌다. 이 엄중한 시국에 장외 집회 등 극한투쟁은 부담이다. 20대 국회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협상보다 투쟁을 앞세웠다가 얻은 것 하나 없이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장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거대 여당의 완력에 꺾이고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겠지만 예결위를 포함 7개 상임위를 받는 차선책도 버려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지만 혼미한 정국을 해소할 열쇠는 통합당에 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향배도 좌우될 것이다.

법사위원장 선출로 국회가 개문발차를 한 마당에 이를 둘러싼 논쟁은 소구력이 약하다. 과제가 남았다면 국회법을 개정해 자구와 체계 심사권 등 논란이 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상임위 배분을 아예 법제화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고 이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다수결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 숫자가 중요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180석을 준 국민의 뜻과 시대정신은 독단이 아니라 협치에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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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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