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석 달 가뭄보다도 사흘 비가 견디기 힘든 법인데, 열흘 넘게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고, 벽장엔 푸른 이끼꽃마저 고개를 내밀었다. 간밤에는 초가집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천둥이 쳤고, 아침 하늘은 아직도 노기(怒氣)를 잔뜩 머금은 상태다. 음기가 발동한 용 한 마리가 제멋대로 까불면서 물속에 가증스럽게 똬리를 틀어 비를 뿌린다는 유언(流言)이 떠오를 정도로 계곡물은 무섭게 차오르고 있다. 천제(天帝)에게 호소하고 싶어도 주재자가 하는 일을 모두 알 수도 없는 노릇, 이 비를 맞으며 힘겹게 부역하는 백성들의 모습만이 스쳐 지나간다. 진흙탕 길에 메고 지며 고생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창가에 누운 자신의 한가로움이 마냥 미안한 심정이다. 이는 조선 중기 문장가의 한 명인 계곡 장유의 `장마`라는 한시를 풀이한 내용으로, 연일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백성을 향한 애민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비는 내리는 양이나 모습, 시기에 따라서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그 종류만도 60여 개를 헤아리니, 각양각색의 비를 표현한 선현들의 지혜가 새삼 놀라울 정도다. 봄에는 비가 와도 일을 할 수밖에 없어서 일비, 여름에는 비가 오면 낮잠을 잔다 하여 잠비, 가을걷이 끝나고 떡을 해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떡비, 농한기인 겨울에는 술 한잔 곁들일 수 있어 술비라고 했다. 이중 여름 장맛비는 내리는 양이 고약해서인지 고우(苦雨) 또는 음우(淫雨)라고도 불린다. 상대적으로 장맛비가 내리지 않아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가면 천무음우(天無淫雨)라 하여 태평한 시절을 비유하기도 했으니 장맛비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한없이 내리는 장맛비가 얼마나 싫었으면 정약용은 `괴롭고 괴롭게도 자꾸만 비가 내린다(苦雨苦雨雨故來)`고 하소연까지 했을까.

다산이 괴로워한 고우의 계절이 돌아왔다.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맹자의 말처럼 장마는 장마다워야 하고 이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올해는 장마와 무더위로 인한 재해가 `역대급`일 것이라는 예보가 한층 무서운 말로 다가온다. 조선시대에는 장마가 지면 노총각과 노처녀의 결혼을 장려해 음양의 조화를 맞추고자 했고, 음의 기운인 비를 막고자 양의 기운인 숭례문을 열어서 재해를 예방하고자 하였다. 세조는 장맛비가 너무 많이 내리자 승정원에 명하여 수라상의 음식 개수를 줄이고 음악을 중지하는 것으로 민심을 대변했다. 시의(時宜)에 맞게 내리는 감우(甘雨)와 적우(適雨)가 되기를 바라는 위정자의 심정을 담아서 말이다. 위정자는 날이 가물면 기우제(祈雨祭)로 백성의 마음을 달래야 했고, 장마철에는 기청제(祈晴祭)로 민심을 어루만져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불가항력적 자연을 극복해내기 위한 노력은 우민(憂民)과 위민(爲民)을 넘어 모든 백성은 하늘이 낳았다는 천민(天民)의 사상까지 담아내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면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국민과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위정자의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는 것을 주재자도 잘 알지 않을까 한다.

요즘 우리는 전대미답(前代未踏)의 길을 가는 중이다. 세상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져 있지만, 코로나19로 우리의 K-방역 수준이 만방에 입증되면서 재난에 맞서는 위정자의 대처와 숨은 영웅들의 헌신도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유례 없는 바이러스와의 재난과 싸우는 와중에 우기(雨期)의 재해까지 더해진다면 국민의 우기(憂氣)도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에서는 장맛비가 끝남과 동시에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여주는데, 올해 장맛비도 세상의 모든 바이러스와 갈등을 씻어주는 행복한 호우(好雨)주의보를 전해주리라 기대해 본다.

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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