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헌 인아트 대표
엄태헌 인아트 대표
`불멍`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캠핑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불멍`이라 부른다. 이게 무슨 재미일까 싶은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캠핑의 매력으로 불멍을 꼽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멍하다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비우고 나를 돌아보는 꽤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불멍이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삶은 언제나 가속도가 붙게 마련인데, 자의든 타의든 한걸음 늦춰진 삶을 살게 된 요즘,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주변에 전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 나를 둘러싼 집이라는 나만의 작은 우주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집 `우(宇)`, 집 `주(宙)`. 우주라는 단어가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건 좀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우주가 바로 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범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대단한 것 들이 있다. `일상`이 그렇고, `집`이 그렇다. 집은 나를 둘러싼 우주이고, 일상은 우주의 정해진 궤도 같은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생각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우리의 집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부분은 집에 나를 맞추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생활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나의 집을 나답게 바꾸는 건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아주 멋진 일이다. 생애주기별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질 때마다 나의 우주도 조금씩 확장되고 변화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이 바뀐다. 이러한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 편리한 동선을 만들고, 프라이빗 공간을 마련하고, 요리를 좋아하거나 책 읽기를 좋아한다면 그 경험과 가치를 나누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일상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가득한 복잡한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작정 물건을 버릴 수는 없듯, 집에 대해서 좀더 고민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무작정 비워내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듯, 나에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동시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힘은 경험과 관심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거창하고 복잡하지 않게, 가구의 자리를 바꾸거나 몇 개의 가구를 더해주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변화는 가능하다.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원한다면, TV를 치우고 소파의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다른 일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약간의 수고로움과 아이디어만 갖고 있다면, 집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지게 바뀔 수 있다. 수납장을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발코니대신 창문 아래 벤치를 놓고 근사한 티 테이블 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소파를 없애고 기다란 식탁과 의자를 놓고 멋진 조명을 늘어뜨리면 카페에서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나만의 필터를 거쳐 공간을 바라보는 훈련이 더해지면 내가 진짜 원하는 나만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섯번의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까지 계속해 온 생각은 `자연과 나, 그리고 나의 집` 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위로 받을 수 있는 단단한 울타리이자,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우주, 집. 나를 위해 집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그 안에서 일상의 행복을 다시한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엄태헌 인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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