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은 여성, 살림 등을 테마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1세대 민중미술 작가이자, 1세대 페미니즘 작가인 그녀는 개인창작과 더불어 행동주의 미술로서 실천적 예술 활동을 지향했다. 그녀의 여러 작품 가운데 `식사준비`(1995)는 여성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내게는 퍽이나 흥미롭다. 재래시장이나 혹은 마트 등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는 여성의 일상이 거대한 화면에 클로즈업 됐는데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그림 속의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이러한 노동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돌봄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이다. 왜냐하면 음식은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물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의 노동은 장보기와 음식 만들기 등 집안일뿐만 아니라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것으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맞벌이가 일반화되어도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치부됐던 집안일과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 되곤 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유치원이나 학교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돌봄은 오롯이 여성의 것으로 가중되고,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더욱 증가했다. `돌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그 취약성이 더 크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돌봄의 문제를 개별 가정이나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실질적인 제도 보완으로 모두가 함께해야 할 것으로 변화가 생기길 기대한다. 고경옥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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