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부원장
김광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부원장
언제부터인가 `출연연 혁신`은 그 표현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등장하는 과학기술분야의 의제가 되었다. 90년대 이후 기업과 대학의 연구개발(R&D) 역량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출연연의 필요성과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출연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운용되며, 국익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대학이나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학은 `진리탐구와 인재양성`이 존재 이유이며,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출연연은 원칙적으로 국가와 국민이외에 이해관계자가 없으며 정부의 지원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연구개발을 하는데 있어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국가와 국민의 요구에 전적으로 응할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조직화된 과학기술자 집단인 것이다.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확대되어야만 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출연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지금의 출연연의 효율과 효용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출연연의 위상 재정립, 운영체계 효율화, 발전전략 등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개선방안이 제시되고 추진되어 왔다. 과기정책 전문가들은 `창의적 융합`, `개방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기술경영 전문가들은 식스시그마, 균형성과평가제도(BSC) 등 경영효율화 기법 도입을 통한 논문, 특허 등 연구실적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른 전문가들은 민간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렇듯 지향점이 혼재됨에 따라 평가제도도 뒤죽박죽되고 만다. 다행히 최근에는 국가가 출연연을 운영하는 목적이 연구 실적물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각 출연연별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확실하게 정립하자는 출연연의 역할 재정립이 진행됐다.

그렇지만 역할과 임무의 재정립만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출연연으로 도약할 수 없다. 출연연의 잠재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현장 처방 없이는 과거와 다름없이 내용 변화 없는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지금은 출연연이 하고 있는 일은 물론 일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개선하고 바꾸어나가야 할 때이다. `혁신`, `융합` 등의 거대한 구호와는 걸맞지 않는 하찮은 일로 보일 수 있지만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진정한 `혁신`은 정책토론회에서의 결의와 구호가 아닌 연구 현장의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먼저 출연연 구성원들 스스로의 혁신의지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가 당면하고 있거나 앞으로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문제, 국가의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미래기술을 출연연이 반드시 해결하고 확보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과제를 기획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 과제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자를 연구실에 내버려 둘 수 있는 배려와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연구자로서 어느 정도 성장하여 과제책임자가 되면 비전문가들을 상대로 과제내용, 예산, 성과물에 대한 설명 및 각종 평가심의회 참석은 물론 이런저런 과기정책포럼 등 행사성 모임에 참석하느라고 매우 바쁘다. 결국 깊이 있는 전문가로 성장하기 보다는 대중과학자나 관리자로 조로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출연연에 대한 잦은 정책 변화와 관리감독 강화가 대형 성과 창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함을 충분히 경험했다. 출연연 대상의 정책과 제도개선은 숙고의 과정을 통해 혁신 지향적으로 결정하되, 일단 적용되면 연구 현장에 체감될 때까지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단, 그 이행 과정은 출연연의 자율에 맡기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결과에 대한 책임은 확실하게 묻는 `자율과 책임`의 운영 체계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김광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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