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구월산 유격대…부부 모두 무공훈장 수여

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 사진=대전현충원 제공
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 사진=대전현충원 제공
"부모님은 한 평생 나라를 위해 살았으나 고초에 비해 인정은 적게 받으신 분들입니다."

부부 모두가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생전에는 갖은 고초를 겪은 인물들이 우리나라에 있다. 바로 6·25전쟁 당시 구월산 유격대를 창설해 전공을 세운 김종벽·이정숙 부부다.

이들의 아들인 김광인(66)씨는 "나라를 위해 한 평생을 다 바친 분들"이라며 "가족보다도 나라에 헌신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셨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종벽 구월산 유격대장은 1914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으로 부대를 창설해 공산군과 맞선 인물이다.

전쟁 이후에는 육군에서 공수·사격·폭파·탈출 등을 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정숙 유격대원은 1922년 2월 함흥태생으로 6·25전쟁 직전 공산군 손에 가족을 잃었다. 이후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해 김종벽 소령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다양한 특수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1951년 1월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0여 명을 구출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양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구월산의 여장군`이란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김종벽 소령은 2012년, 이정숙 유격대원은 2015년 각각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살았던 이들은 생전에는 생활고는 물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아들 김광인씨는 "어머니는 1959년 서대문형무소에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비정규 군인이었던 부하들의 생활 걱정을 들어주다 본인을 챙기지 못한 채 2004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며 "가족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더욱이 사후에도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것은 아들인 김광인씨 뿐이다. 그의 누이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모아놨던 돈으로 부모님과 구월산 유격대의 명예회복을 위해 25년 간 싸우며 모두 사용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

김씨의 노력이 건국 최초의 부부 무공훈장 수여자를 만든 셈. 부부의 대전현충원 안장도 이때서야 이뤄졌다.

그는 "국가가 나서 이들의 생활을 보살펴줘야 한다"며 "전쟁이 끝난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구국 영웅들에 대한 대접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전현충원은 이들 부부를 6월의 현충인물로 지정하고 4일 현충문 앞에서 지정서 전달식을 가졌다. 임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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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의 묘. 사진=대전현충원 제공
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의 묘. 사진=대전현충원 제공
6월 현충인물 선정패 증정식
임성현 대전현충원장이 4일 오후 대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된 `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의 유가족에게 `이달의 현충인물` 선정패를 전달했다. 윤종운 기자
6월 현충인물 선정패 증정식 임성현 대전현충원장이 4일 오후 대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된 `김종벽·이정숙 부부 호국영웅`의 유가족에게 `이달의 현충인물` 선정패를 전달했다. 윤종운 기자

임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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