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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 수군 한눈에… 177년된 태안 신진도 폐가서 군적부 발견

2020-06-04기사 편집 2020-06-04 17:07:09      김동희 기자 innovation86@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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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진 소속 수군 60여명 이름·주소·나이 등 기재
조선시대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 등 확인도

첨부사진1고가에서 발견된 상량문. 사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조선시대 충청 수군(水軍)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태안 신진도의 폐가에서 발견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에서 조선시대 후기 수군의 명단과 특징을 기록한 군적부를 지역 주민의 신고로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신고를 한 주민은 지난 4월 22일 산책 도중 슬레이트 지붕에 황토를 바른 오래된 한옥 폐가를 우연히 발견하고 벽지에서 한자로 된 글씨들을 확인했다.

이번에 발견된 수군 군적부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안흥진 소속 60여 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보인(保人)으로 나눠 이름, 주소, 출생연도, 나이, 신장 등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기재돼 있다. 수군의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唐津縣)으로 당시 당진 현감 직인과 자필로 서명한 수결(手決)이 확인됐다.

문서를 통해 수군 1인에 보인 1인으로 편성된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뤄 볼 때 수군의 징발보다는 18-19세기 군복무를 직접 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던 삼베나 무명 등 군포(軍布)를 거두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안흥량(安興梁) 일대에 주둔했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에는 한양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군 역할을 했다. 특히, 수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려운 바다인 안흥량 일대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사고 방지와 통제를 하는 것이었다.

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서산 평신진(平薪鎭) 수군 군적부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어 이번에 발견한 자료는 희귀성이 높고 앞으로 조선시대 수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연구소는 고가를 조사하던 중 상량문(上樑文)에서 청나라 도광제(道光帝) 선종의 연호인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을 발견하고 건축연대를 1843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판독이 가능한 한시(漢詩) 3편도 함께 발견됐다. 당시 신진도 일대는 시객들이 몰려들던 안흥팔경(安興八景) 중 하나로 바닷가를 배경으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손태옥 실무관은 "이번에 발견한 군적부는 수군이 주둔했던 현지에서 이름, 나이, 주소, 출생연도 등이 상세히 기재된 문서로 조선시대 수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삼국 시대 이후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안흥량 일대에 넓게 분포한 수군진 유적과 국외 사신을 영접하던 관청 건물인 객관 유적의 연구와 복원 활용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유물은 5일 오후 1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세미나에서 공개할 예정이다.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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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고가 외부 모습. 사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첨부사진3충남 태안의 한 고가에서 발견된 조선 후기 수군 군적부의 일부. 사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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