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출신 단 한 마리의 경주마 '아침해'
군마로 전장누빈 공헌에 美해병 영웅대우

전투에 참가한 레클리스의 모습. 자료제공=한국마사회
전투에 참가한 레클리스의 모습. 자료제공=한국마사회
1997년 미국의 라이프(LIFE Magazine)지가 100대 영웅을 선정했다.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 마더 테레사 등 역사 속 위인들과 함께 사람이 아닌 군마(軍馬) `레클리스`(Reckless)가 선정된 경주마 `아침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해병대 소속인 이 군마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는 경주마였다.

◇여동생의 의족을 위해 `아침해`를 떠나보내다

6·25전쟁에 투입된 미군이 산길로 물자를 이동하기엔 지프차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군은 물자를 이동을 위해 군마를 활용키로 한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10월, 미군 해병대 소속 `프레더슨`은 군마 수급을 위해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 `아침해`를 만나게 된다. 몽골계 혈통을 이어받은 암말 `아침해`는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로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한 체형이었다.

당시 `아침해`의 마주는 `김학문`이라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뢰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든 말을 눈물로 떠나보냈다.

◇이름 없는 군마에서 하사 `레클리스`로 진급

총탄과 포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투입된 `아침해`는 고지대로 탄약과 물자, 부상병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각 발달로 큰 소리에 지레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우렁찬 포성소리와 여러 번의 총상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길을 오를 땐 탄약을, 내려올 땐 부상당한 병사들을 실어 날랐다. 포탄이 날아올 땐 몸을 바싹 눕기도 하며 철조망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이 특별한 말은 사람의 동행 없이도 완벽하게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치룬 대규모 전투인 일명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하루 평균 51차례나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미 해병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녀를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로 이름붙이며 진급에 진급을 거듭, 54년엔 병장으로 진급했다.

◇종전 후 전우들과 미국으로 송환,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종전 후 54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되었다. 성대하게 치러진 환영식에서도 `레클리스`는 단연 스타 대우를 받았다.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수여받고 59년 하사관으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이듬해인60년 공식적으로 은퇴하며 퇴직금을 대신해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받았다.

은퇴 후에도 동료 전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퇴역군인 활동을 지내던 `레클리스`는 1968년 노환과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대하게 치러진 `레클리스`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의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용맹함의 아이콘이 된 영웅馬를 기렸다. 13년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 및 18년 켄터키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건립됐으며 한국에서도 16년 `레클리스`가 활동하던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되었다.

◇경마계에서도 전쟁 영웅 `레클리스(아침해)`를 기리다

`아침해`의 용맹함을 본받으라는 의미였을까, 2002년에 태어난 한 경주마에 `아침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015년생의 경주마 `돌아온아침해`도 서울 경마공원에서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두 마리의 경주마 모두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치러진 경주에 모두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주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하사관 레클리스의 이름을 딴 `Sergeant Reckless`라는 경주마가 활동했고, 그 마주의 제안으로 2014년 켄터키더비 경주 개최일에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레클리스`의 추모행사가 시행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는 전쟁 영웅이 된 한국의 경주마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작년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말 문화공연 <레클리스1953>은 전 좌석 매진으로 높은 인기를 보였다.

한국마사회 김낙순 회장은 "앞으로도 말과 함께 하는 이색 문화공연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희생, 헌신하신 `숨은 영웅`을 기리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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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 호스 파크의 레클리스 동상 제막식. 자료제공=한국마사회
켄터키 호스 파크의 레클리스 동상 제막식. 자료제공=한국마사회
화포와 탄약을 수송하는 전장터의 레클리스. 자료제공=한국마사회
화포와 탄약을 수송하는 전장터의 레클리스. 자료제공=한국마사회

장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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