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은 올 여름 평년보다 무덥고 작년보다 폭염일수도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층 더워질 여름을 준비해 에어컨 판매량은 이미 급증세다. 어느 온라인마켓 집계 결과 지난달 1일부터 14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19% 많은 에어컨이 팔렸다. 또 다른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5월 1일부터 27일까지 에어컨 판매량이 작년보다 43% 신장했다.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왕도 한여름 삼복 더위는 난제였다. 요즘은 장삼이사도 에어컨만 있다면 구중궁궐이 부럽지 않다. 여름 나기 필수품으로 빠르게 자리잡은 에어컨. 하지만 그 시원한 바람 속에는 누군가의 고된 땀과 때로는 눈물까지도 깃들여 있다.

"더위를 식히는 에어컨이 `냉각하는 열`로 지구를 덥힐 때, 에어컨을 수리하는 계란들은 그 에어컨의 열기로 익어갔다. 더위를 냉각하는 기계와, 그 기계를 고치는 계란들과, 그 기계가 가열하는 지구가, 폭염의 원인과 결과를 섞으며 서로를 불덩이로 몰아넣었다…난간을 넘어가 실외기에 몸을 실으면서 나는 생사가 내게 속하지 않는 세계로 발을 디뎠다. 에어컨에 더해진 몸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 난간은 나를 데리고 추락할 것이었다."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웅크린 말들`(이문영) 속 에어컨 설치 기사들의 노동 풍경이다.

올해 초 광주시 서구 한 원룸 3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던 60대 기사 한 명이 추락했다. 머리를 크게 다친 기사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해 7월 부산의 빌라에서는 거실 창문의 철제 난간 뒤로 에어컨 실외기를 옮기던 30대 기사가 실외기와 함께 9m 아래로 떨어졌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은 기사는 치료도중 사망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31일. 천안에서 에어컨과 냉장고 등을 고치던 한 수리기사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와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이 유족으로 상가를 지켰다.

올해 여름 계란들의 비극은 종식될까.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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