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충덕 북칼럼니스트
노충덕 북칼럼니스트
우리는 오감을 동원해 세상을 본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름대로 조직하고 맥락을 정교화해 의미를 구성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보이는 현상만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면과 절대적 진리를 본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일을 거듭하면 보는 눈이 뜨인다. 그렇지만 보는 것의 대부분은 현재다. 사물과 현상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변화를 보지 못하면 세상을 바로 본다고 할 수 없다. 고전을 읽고 느끼는 점은 독자마다 다르다. 인생의 방향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독자도 있지만, 고답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찬란한 빌딩 야경에서 번영과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동시에 본다. 세상 보는 눈을 안목이라 하거나 관점이라 한다. 안목에도 높고 낮음과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요즘 뉴스로 세상을 보면 혼란스럽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넘치는 정보를 접한다. 가까이는 코로나 19 펜데믹, 국회의원 선거, 전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 등은 판단을 요청하고 행동하라 한다. 정보는 어느 한 편에 서야만 하도록 감정을 자극한다. 정보를 두고 주고받는 말과 글이 더는 언어가 아니라 칼이고 총이다. 우리는 주관적인 평가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세상을 제대로 보고 살고 싶다.

조각난 정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전문 분야 연구자는 어떤 문제의 해결과 관계된 미래 추이의 예측한다.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여 여러 번 설문하고 정성적으로 분석하는 델파이 기법을 도구로 삼아 세상을 본다. 정치학, 사회학 등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춘 학자, 교수, 전직 언론인 등은 신문·방송 등에 출연해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일반인도 전문가의 의견 못지않게 의견과 주장을 펴는 시대지만, 전문가의 안목과는 격이 다르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때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판단을 보류하라고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선입견으로 판단하지 말고 현상 자체를 관찰해 기술하고 판단은 그 후에 하라고 한다. 에포케는 `타자 이해의 어려움`을 깨닫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준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인 까닭이다.

보통 사람이 세상을 보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남의 의견과 주장에 맞장구치더라도 자신만의 고갱이가 있어야 한다. 지적인 판단과 정서적인 판단이 함께해야 주제적인 판단이다. 한쪽의 의견만 듣다 보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터넷 뉴스, TV 뉴스, 신문을 볼 때 같은 사안을 진보와 보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행위인지, 이익을 얻으려 하는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의무와 법질서를 준수하고, 법 이상의 공리와 사회 계약으로서의 도덕성, 보편적 도덕과 양심에 따르고 있는가를 보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 부정과 부패는 보수냐 진보를 택하지 않는다. 거버넌스를 가진 쪽이 부패한다.

때로는 판단을 중지할 수 있고 주체적,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일이다. 변화의 흐름을 알아채야 패러다임에 적응하고 낭패를 겪지 않는다. 코로나 19 탓에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라는 루쉰의 희망을 다시 떠올리자.

노충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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