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텔·제이슨 무어 지음/ 백우진·이경숙 옮김/ 북돋움/ 348쪽/ 1만 8000원)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표지.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표지.
지구의 미래, 인류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비상사태라 부르기 시작했고 불평등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새로운 위기 요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 문제는 절박하고 해답은 미약하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이 시계 제로의 시대를 담대하게 진단하고 처방한다.

저자인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현재를 자본세(Capitalocene)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부름으로써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파고든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바로 자본주의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구의 미래를 가늠하도록 안내한다.

특히 저자들은 미래의 지적인 생명체들은 인류의 흔적으로 플라스틱과 함께 닭 뼈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닭을 꼽은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기 때문. 그런데 이 닭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조합, 가슴 근육을 부풀린 결과물이다. 육계 농장과 사료용 토지에는 공공 자금이 투입된다. 또 막대한 에너지도 싸게 공급된다. 계육 공장은 시급 25센트를 받는 노동자들로 굴러간다. 이 노동자의 86%는 질병을 앓고 있고 대개 가족의 돌봄에 의존한다. 또 이런 시스템 덕분에 닭은 저렴한 식량으로서 다시 노동자들에게 공급된다.

치킨 한 박스에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가 그대로 담겨 있음을 저자들은 날렵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과연 치킨만 그럴까. 저자들은 소빙하기와 흑사병이 봉건제를 무너뜨린 14세기 유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서양의 마데이라섬이 설탕 농장으로 만들어진 건 국가, 자본가, 지배 계급이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찾아 나서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잉여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 지배 계급은 `신대륙` 전체로 프런티어를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은 저렴해졌다.

이와 함께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궤적을 좇는다. 그의 흔적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구축한 인식 세계의 허상을 보여준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개척의 주체와 객체,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백인과 비백인,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이분법이야말로 대부분의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생명이 저렴한 것으로서 지배의 대상이 되는 데 기여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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