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 내과 원장
이양덕 내과 원장
`선생님, 저 코로나는 아니죠?` 요즘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우리는 질문을 받을 때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환자가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은 당연히 `예! 코로나19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라는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도 보듯이 객관적 근거를 무시하고 이념이나 정파를 고려한 허언(虛言)이 나라를 위기에 빠지게 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받아온 답장에는 분명히 `군사를 거느리고 명나라를 치고자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서인의 입장에서 왜적의 침략 가능성을 부정한 김성일의 보고는 그 후 전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기에 환자의 반복적인 질문과 연민에 이끌려 과학적 근거도 없이 듣기 좋은 답변을 하는 것은 사회공동체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나는 의사이고 과학자이다. 따라서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희망적인 답변으로 위안을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한다. `코로나 무증상 감염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고 행동하세요. 그래야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수 있고 우리사회가 안전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2020년 5월 6일부터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다. 계속 연기되었던 등교가 많은 걱정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방심할 때가 아니다. 무증상 감염과 전파가 가능한 코로나19가 언제 어디서 폭발적인 전파를 일으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등교를 계속 연기할 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작정 지속할 수도 없다. 득실을 살펴보며 그 시점과 기한을 정해야하는 정책결정자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국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공동체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정치와 윤리가 필요한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을 윤리학의 일부로 본 이유이기도 하다. 신종 감염병으로 인류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인류 공동체의 행복을 다시 찾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정치보다 윤리, 즉 `감염윤리`가 필요하다.

신종 감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모든 것을 정치와 법으로 완벽히 규정할 수도 규제할 수도 없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문화적 인식변화의 결과인 `감염윤리`가 정치와 법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빈틈을 방어해줘야 한다. `감염예절`을 지키고 `감염폭력`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감염예절`이란 감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고 `감염폭력`은 타인에게 병을 전파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인을 향한 기침, 콧물이나 객담의 비위생적 처리, 밀집된 공간에서 큰 소리의 대화, 감염병환자의 무분별한 공공시설이용 등은 일종의 폭력행위다.

바이러스의 팬데믹은 현대의 전란(戰亂)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현대판 청야전술(淸野戰術)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청야전술이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렸듯이 현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했지만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번 코로나19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감염윤리`로 승화되어 대한민국의 행복을 수호하였으면 한다. 이양덕 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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