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교사
김대건 교사
코로나19로 학교가 조용하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강철 같은 무지개`만큼이나 나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온라인 개학을 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이 현실에 몸은 적응했지만 불편한 평온함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름고등학교는 교사들이 노트북이나 스마트패드를 들고 빈 교실에 들어간다. 아이들은 화상 회의 플랫폼을 통해 구축된 회의실에 접속해 있다. 출석 확인을 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나는 실시간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편인데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미리 제작한 강의 콘텐츠를 보고 오라고 학생들을 독려한다. 자는 학생도 없고 친구들과 떠드는 학생도 없다. 학생의 이름만 띄워진 짙은 회색 화면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혼자서 강의를 녹화하는 중이라고 자신을 속이면 수업을 진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진도도 빠르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돌아오면 진이 빠진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열정적인 교사라는 소리를 학생들에게 듣는 편이다. 사실 여기에는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는 나의 계산이 깔려 있다. 축구 실력이 형편없으면 많이 뛰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시간, 그것이 내 수업을 규정한 말이었다. 참으로 오만하고 편협한 생각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묘한 무기력함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확실히 안다. 아이들에게서 더한 에너지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수업이나 쉬는 시간, 아이들과의 만남은 굉장한 몰입감을 안겨주어서 비록 정신은 없었지만 내 하루를 충실하게 만들었다. 일과 중에 잡념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온갖 잡념이 내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우습게도 군 복무 시절 나를 괴롭혔던 선임의 말이 떠오른다. 몸이 편해서 그렇다고. 코로나 이전의 나는 학생들이 귀가한 뒤에 찾아오는 학교의 정적을 매우 소중히 여겼으나 이제는 달갑지가 않다. 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 있었기에 그 조용한 시간이 의미를 지닐 수 있었나 보다.

5월 15일,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스승의 날을 맞았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쑥스러운 축하를 받지 않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졸업한 지 꽤 된 녀석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일을 하고 있다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오랜 공부를 시작할 것 같다고, 입대한다고, 목표한 것을 꼭 이룬 뒤에 찾아뵙겠다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상상했던 두려움을, 세상의 차가움을 실체로 느끼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지독히도 일이 안 풀렸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답장을 보냈다. `초조해 하지 말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라고`, `건강하게 군 복무 마치라고, 전역 후를 걱정하지 말고 나를 위해 좋은 습관 한 가지만 만들어서 나오라고.` 이건 그때의 내게 꼭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여전히 유효한 내 삶의 약속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하고 반성하게 된다. 문학은 세상엔 돈보다 중요한 것이 너희들 곁에 얼마든지 있다고, 그것을 붙잡는 용기를 길러주기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허세를 부릴 때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묻곤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들을 보며 내 일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 가치 있었다고 자랑할 만한 것이 있긴 했었던가.

고등학교 3학년들부터 등교를 시작하게 되면 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난 금세 힘들다고 짜증을 내겠지. 그러니 지금 말해둬야겠다. 낯간지러운 말도 가끔은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있는 대로 폼(?)은 다 잡았으니. "얘들아, 샘들은 너희들이 있어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낀단다. 고맙다. 학교에서 보자." 김대건 아름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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