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의하면 진(晉)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로 보내오면서 통일신라 시대 음악을 주도한 악기는 거문고였다. 이전의 악기에 비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여백이 있고 아정(雅正)한 기품을 지녔기에 백악지장(百樂之丈)의 악기가 된 것이다. 반면 비파는 왕소군이 장안을 떠나 흉노로 갈 때 구슬픈 이별의 마음을 악기에 실어 기러기까지 홀린 악기라서 손가락으로 줄을 타는 발현(拔弦) 악기 중 최고봉으로 일컬어진다. 거문고와 비파에 가야금이 합해져서 지금까지 삼현(三絃)에 속하는 악기로 불리고 있다.

조선 전기 학자 권호문은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에서 청량산의 맑은 시냇물을 비파소리에 비유했고, 중기에 휴정스님은 `과저사문금(過邸舍聞琴)`에서 거문고 가락이 주는 여운에 심취해 있었다. 후기에 역관 변종운은 `중야문금(中夜聞琴)`에서 가을밤 거문고 소리에 끌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강원도 고성군을 선악(仙樂)의 비파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라고 극찬하였다. 이처럼 잔잔한 깊이를 품은 거문고와 맑고 따뜻한 비파의 선율이 서로 더해지면 천상의 조화인 금슬상화(琴瑟相和)를 이루고, 금과 슬의 화음처럼 부부가 화합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면 금슬지락(琴瑟之樂)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제14회 부부의 날이다. 세상의 수많은 인연 중에 부부로 맺어지는 인연은 참으로 특별한 조합이다. 그래서인지 두(2) 사람이 하나(1)가 된 소중함을 일깨우라고 2007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제정하기까지 했다. 시대가 변해 부부의 의미도 많이 현대화(?)되면서 예전에는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부모가 되는 것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걱정이 기우일 정도로 결혼에 대한 인식이 탈(脫) 전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음양의 조화를 들먹이며 `백년해로`와 `파뿌리` 운운하던 그 흔한 주례사들은 구시대의 사어(死語)로 귀속되는 느낌이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고리타분한 관계 설정은 꼰대들의 대명사처럼 치부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변화 속도에 비해 결혼에 대한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남녀가 인연을 맺어 결혼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걸치면 부부가 된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방식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남녀상열(男女相悅)의 해피엔딩이 결혼인 것이다. 지금 시대에 결혼이 필수냐 선택이냐의 판단 여부는 개인의 몫이지만,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려와 존중으로 예를 갖추어야 하는 마음은 고금을 막론하고 지켜야 할 부부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마치 손님을 대하듯 인격적인 예를 갖추는 `상경여빈(相敬如賓)`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로 빈객을 대하듯 형식적 경어(敬語) 사용을 하자는 말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경심(敬心)을 견지해야 한다.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타자(他者)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인연의 중요성만큼 서로가 달랐던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는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갈 줄 아는 현명한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일체화로 변해가는 과정이므로 상대의 단점을 파헤쳐가며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다 내 탓이오`라는 반궁자성(反躬自省)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결혼(結婚)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평생 가정과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없어지는 결혼(缺魂)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앞으로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나 땐 말야…" 하면서 결혼은 하는 게 좋다고 말하면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로 낙인찍힐지라도 오늘만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라고 전하고 싶다.

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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