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구매, 외식 대신 담배 보루로 사재기
재난지원금 취지 따른 품목제한 필요 목소리도

[사진합성=대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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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이 10%도 안 남는 담배만 몇 보루씩 팔리니 답답할 노릇이죠" 19일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슈퍼마켓 사장 이모(65)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은 늘었지만 대부분 매출이 나지 않는 담배 구매 고객 때문이다. 이씨는 "평소 한 두 갑씩 사가는 손님들이 파란색 선불카드로 1-2 보루를 사간다"며 "생필품이나 식품류는 거의 판매가 없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지난달부터 코로나19로 어려워하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지급된 대전형 긴급재난지원금이 `담배 사재기` 조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선 골목상권에서는 재난지원금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구매 제한 품목을 추가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전시에 따르면 지난 달 말까지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은 소매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됐다.

시가 시중은행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조사한 결과, 총 338억 원이 지급됐고 142억 원이 소비됐는데, 이중 37억 원(26%)이 편의점, 동네마트에서 사용됐다.

하지만 담배 사재기 현상으로 골목상권 상인들은 지원금 지급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유모(56)씨는 "평소 담배매출은 한 달 50만 원 수준이었는데 재난지원금이 풀린 최근 2-3주간 거의 담배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며 "손님이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이래서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담배판매량은 2억 8749만 갑을 기록했다. 이는 2억 4230만 갑이 팔린 2월보다 4000만 갑 이상 소비된 셈으로 지난 해 같은 달(2억 5520만 갑)보다 13% 늘어났다.

담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이다.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카드로 담배를 구입한 최모(71)씨는 "지자체에서 쓰라고 준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걸 사는데 문제가 있냐"며 "내가 좋아하는 담배를 미리 사놓고 보관하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애연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재난지원금 지급 취지를 살리려면 `담배를 재난지원금으로 구매할 수 없는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담배는 일반 생필품과 달리 부가가치세뿐만 아니라 담배소비세, 국민건강기금, 지방교육세 등을 포함하고 있어 실제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마진은 10% 남짓에 그친다.

편의점 점주 오모(47)씨는 "담배는 아무리 팔아봤자 남는 게 없다. 4500원짜리 담배를 팔아봤자 세금 떼고 남는 건 400원 정도"라며 "담배 사재기는 결국 소상공인 주머니를 거치지 않은 채 나라 곳간만 채우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정부나 지자체가 진정 소상공인을 위한다면 담배를 판매 제한 품목에 올리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이 아닌 만큼 예측하기 힘든 소비형태가 생겨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당장 담배 등 일부 품목을 구매 제한하기는 어렵겠지만 만약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재난지원금 취지와 맞는 더 정밀한 사용대상 지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황의재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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