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김용언 기자
취재2부 김용언 기자
전 세계에는 피지배의 역사가 남아 있다. 가까이는 대한민국에 멀리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6개월 정도 머물렀던 필리핀의 당시 첫 인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습한 날씨도 그렇거니와 좀처럼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도시 풍경 때문이다. 스페인, 미국, 일본에 의한 피식민 경험을 겪어 도시 구석구석은 이민족의 잔향(殘香)이 가득했다.

식민지배 시절 필리핀 국민들의 희망은 사라졌을 테고 삶의 지표도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 세기가 지난 지금 앞서 열거한 곳들은 뛰어난 관광자원으로 변모했다. .

시야를 국내로 돌려본다. 목포 유달산 남쪽에 있어 `남촌`이라 불린 일본인 거주 지역은 문화공간으로 꾸며지고 있다. 일제 수탈의 역사가 남은 전북 군산은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얼마 전 대전 동구 소제동을 찾았다. 철도 관계자들이 많이 거주해 `철도관사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이 모여 살던 터라 왜색 짙은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햇볕 좋은 날 눈에 담은 철도관사촌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계태엽이 멈춰버린 것 마냥 한국 근현대사를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도코노마(다다미방의 장식 공간), 도코바시라(도코노마의 장식 기둥), 오시이레(붙박이장) 등 일본 건축 형식은 남아 있지만 내부는 온돌 형식, 한국에 맞춰 계량된 구조다.

건축 문외한의 눈으로 보기에도 보존 가치가 충분해보였다. 철도관사촌은 일본인의 역사보다는 한국인, 즉 대전 시민 삶의 문화가 더 짙게 남아 있다.

이런 철도관사촌 일부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 문화가 오래 남아있고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의 처연한 단상이다.

근현대사 속 열강들의 침탈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시대가 패배했지 유구한 역사에서 계속 패배한 것은 아니다.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곳은 어디든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곱씹어보자. 흔적을 지우는 것만이 능사일지. 민관이 머리를 맞대면 개발·보존이 공존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대전시가 근대문화자산을 관광자원으로 복원한 군산, 목포, 부산처럼 못 할 이유는 없다. 취재2부 김용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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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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