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
>

[한밭춘추] 나의 아버지는 장님이 됐다

2020-05-15 기사
편집 2020-05-15 07:52:30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이아롱 대전연극협회 사무처장
나의 아버지는 나의 오빠이다. 어린 시절 버림 받으셨던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남편을 죽이고 나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나의 어머니는 비극적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신 아버지는 차마 이 참혹한 현실을 두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주검 앞에 스스로 눈알을 파내어 장님이 되셨다. 연극 '오이디푸스 왕' 중 오이디푸스 왕의 딸인 안티고네의 입장이 이럴 것이다.

이런 비극을 직접 겪는 다면, 상황에 완전히 녹아 들어 그 감정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을까? 이런 극한의 상황의 감정을 과연 느낄 수 있을까? 아니, 그 감정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혹은 잠시 빗대어 생각 해 볼 뿐 오랫동안 참혹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맡아 공연을 해야만 하는 배우에겐 저런 비극적 상황도 자신이 직접 겪는 일처럼 감정이입을 해야만 한다. 무대 위에서 살아 있어야한다. 살아서 무대 위에 숨 쉬고 걷는다. 장기 공연이 시작되면 매일 매일을 무대 위 안티고네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리스 팀의 '오이디푸스 왕'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 역할의 나이가 지긋한 여배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극적 현실을 알게 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천천히 무대를 빠져나와 객석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순간 배우가 아닌 이오카스테 여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객석 통로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 역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갖가지 캐릭터로 살아 숨쉬고, 관객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장의 호흡과 상황을 직접 느끼며 동화 될 수 있는 것. 이것이 연극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연극이 주는 매력에 공감하고 연극을 자주 찾아주길 바라본다. 관객이 가득 메운 공연장에서 배우로, 관객으로, 스태프로, 함께 즐기는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아 지길 소망한다. 이아롱 대전연극협회 사무처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