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세상은 넓고 건축은 많다. 아름다운 건축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두통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머리 속은 온통 프로젝트와 연관된다. 공간의 높이, 공간과 공간의 연결, 외부에서의 접근, 모든 시간의 분초가 공간과 조형에 매달려 있다. 길을 가다 또는 책을 보다 멋진 건물을 보면 멈춰 탄성을 지르며 연결고리를 생각한다. 좋은 공간은 기쁨과 환희를 만들고 행복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건축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작가가 본인의 이상과 개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면 건축도 순수예술로 분류되어 정신병동을 작가의 표현대로 온통 붉은색으로 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예술이면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삶과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공학적 특성을 갖춘 건축물이어야 한다. 또한 다른 순수예술과 다르게 의뢰하는 건축주가 있어야만 설계를 통한 건축사의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건축은 예술, 공학, 사회, 경제를 아우르는 그 시대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써 `문화`의 역할을 가지고있다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건축이라는 공간과 관련되지 않은 생활은 없다. 눈을 뜨는 순간에서부터 일하고 휴식하고 즐기는 모든 공간들, 그 공간이 작든 크든 누구나 공간속에서 머물고 생활한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건물, 부동산, 조형적 요소가 가미된 그 무언가 스타일, 재산적 가치 등 자기만의 생각들을 쏟아 낸다. 원시시대에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그저 동굴일 뿐이었는데 어느 날 그 동굴에 사람이 들어가 살면서부터 동굴은 최초의 건축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건축공간은 벽, 지붕 그리고 바닥이라는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내부의 공간은 원래부터 비어있던 공간(空間)이었다. 원래부터 비어있던 공간에 껍데기인 벽과 지붕, 바닥을 만들어 제한된 공간을 구성하고 우리는 그것을 건축이라고 부르는데, 그 껍데기가 건축일까, 비어있는 공간이 건축일까. 두가지 모두 다 답이 될 수 없고 건축이라 할 수 없다. 공간이 사람의 `삶`을 담을 때 그 공간은 비로써 `건축`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은 무언가를 담고 있는 역할을 한다. 건축(建築)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건물을 세운다 라는 뜻으로 사람의 삶을 닮는 그릇이라는 어휘를 담기엔 너무나 왜소한 단어다. 건축은 일제시대 만들어진 단어로 건축 외에 미술, 음악, 유치원 등 우리가 상용하는 많은 말들이 그 시대에 일본에 의해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서양에서의 건축가(Architect)는 으뜸 가는 오직 하나뿐인 기술로 중세이전 건축물의 건축장인도 기록이 남겨져 있으나 우리나라는 국보 1호 숭례문부터 아름다운 창덕궁, 종묘, 불탑, 사찰 등에 이르기까지 작가 미상으로 도편수의 이름 석자를 알 길 없으니 전통 건축방식의 명맥이 단절 위기에 처해있음이 당연할 것이다. 건축은 사람이고 사람의 `삶`인 것이다.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비어있는 공간은 필요와 용도에 맞게 계획하고 한정시켜 주기 위해 벽과 바닥, 지붕을 디자인하며 입체적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도편수였고 현재는 건축사다. 법적으로 시험을 통해 국가에서 그 지위를 부여받아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고민하고 좋은 건축물을 위해 사용자 및 건축주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원형의 컵은 원형으로, 네모의 컵은 네모의 형태로 원래 비어있던 공간인 무(無)에서 유(有)의 형태를 갖춘 건축을 만들고 창조하는 행위는 새 생명의 탄생과 비견될 수 있다. 그 공간에서 행복하고 삶이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건축사들의 마음일 것이다. 건축을 꿈꾸고, 그리며, 만드는 건축사들은 건축의 진정한 가치가 사회에 인식되고 이해되며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포함한 생활 자체가 건축이기 때문이다.

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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