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반성문 없이 민심회복 불가능
극우·막말로는 절대다수 지지 못 받아
건전한 견제 가능한 정책역량도 갖춰야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진보진영 대부로 꼽혔던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88년 칼럼을 통해 언급했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진보·보수의 균형 잡힌 정치를 강조한 것으로 정치권에선 일반화된 상용구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시 리 교수는 좌우가 동등한 완전한 균형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을 듯 싶다. 민주화가 시작됐으나, 여전히 반공주의가 위력을 발휘할 때였고, 심지어 `진보`는 무조건 나쁘다는 통념이 팽배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진보`를 척결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일정 부분 존재시키는 게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호소`쯤으로 이해된다.

21대 총선이 보수야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됐다. `정치`가 사전적 의미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지만, 오히려 국민의 걱정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이젠 정치권 중 `보수`를 꼭 집어 살려야 할 처지다. 보수는 물론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건강한 보수재건을 기원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보수가 합리적인 견제주체로서 제대로 자리매김 해야 기득권을 쥔 진보 진영이 자만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으며,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수진영에선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얘기나, 작금의 미래통합당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골수 보수층의 하소연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주권자들은 반성과 변화를 보이지 않는 통합당에 4회 연속 참담한 성적표를 안겼다. "설령 정부여당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 해도, 통합당은 더 믿을 수 없는 심판대상이다. 품격은 바라지도 않으며, 최소한의 상식만이라도 갖췄으면 한다" 수도권에 출마했다 낙마한 통합당의 한 중진이 총선과정에서 보고 들은 민심 요지다. 심판받은 보수정당이 새롭게 태어나려면 남 탓 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는 것인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나 집권여당의 크고 작은 흠을 들춰내는 데 급급하거나, 한 줌도 되지 않을 권력을 놓고 자중지란을 보이기 일쑤다. 심지어 터무니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며 상식적인 민심으로부터 더욱 외면받는 길로 치닫는 보수정치인도 한 둘이 아니다. 정치 환경이나 구도를 핑계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민심은 결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연령대별 정치성향 추이를 살펴보면 이제 보수가 더 이상 다수이기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보수정당은 `샤이 보수`의 총궐기를 주장하며 역량을 결집시키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대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더 이상 극단적인 `아스팔트 보수`만을 믿고,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전략에만 집중해선 안된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자극적인 막말이 극우를 결집시키거나, 대립구도를 선명히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중립지대의 절대다수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통합당은 무조건 싫다는 비호감도가 60%를 넘었다고 한다. 민심에 다가서려면 선거용 가짜 보수와는 과감히 결별하고, 중도층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보수로 거듭나는 게 급선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블레스 오뷸리주`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구태에서 벗어나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이 붕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혁신하는 게 필요하다. 견제는 제1야당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견제를 명분 삼아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데 골몰한다면 대안 없는 발목잡기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건전한 견제가 가능한 정책역량을 갖췄음을 주권자들에게 인정받는 게 선행돼야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여당도 전향적인 자세로 야당을 대하길 기대해본다. 행여라도 보수정당을 척결대상으로만 본다면, 리영희 교수가 언급했던 `균형 잡힌 정치`는 요원해질 수 밖에 없고, 진보진영 역시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며 협치를 주도해 나간다면, 야당의 건전한 보수재건은 그만큼 빨라질 수 있고, 한국은 두 날개로 안정적인 비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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