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태울 수 없어서 - 이재은 지음/위즈덤하우스/ 224쪽/ 1만 3800원

더는 태울 수 없어서
더는 태울 수 없어서
초중고 학창시절에는 온갖 규제 속에 입시에 매달렸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취직에 실패할까 전전긍긍했으며, 입사 후에는 일에 치여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른이 되면 막연히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쟁터였다. 그래서 어느 서른 살 직장인은 떠났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으로.

1990년생 현직기자의 베를린 생활기를 담은 에세이 `더는 태울 수 없어서`가 출간됐다.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티셔츠를 좋아하는 저자에게 베를린은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였다. 패션을 사랑하는 베를린 사람들은 `획일적인 멋쟁이들`과는 뭔가 달랐다. 왁스로 머리를 올리지 않은 남자가 없을 만큼 멋 부리는데 열중하는 이들이 많은 이탈리아 피렌체나, 더운 여름에도 슬리퍼를 신은 채로는 번화가에 가지 않는 일본 멋쟁이들과도 다르다. 유독 베를린 사람들이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일까. 같은 옷을 입더라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흘깃흘깃 쳐다보며 몸매를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 즐비한 서울보다 편했다. 여기서는 하이힐 보다 운동화, 명품백 보다 투박한 에코백이나 백팩이 흔하다. 베를린의 휴식은 `힐링` 열풍이 거세게 불었던 한국과도 결을 달리한다. 일상이 휴식이고, 자연에서 보내는 베를린 사람들에게서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뿜어져 나온다. SNS에 과시하기 위해 자연 풍경을 눈 대신 카메라에 쉴 새 없이 담아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보다 눈에 담기를 좋아하고,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기보다는 종이책이나 신문을 선호한다. 사람들이 늘 책을 들고 다니니 서점들도 북적인다.

베를린 사람들은 누드문화를 좋아해 전용구역이 도시 곳곳에 있다. 무려 20년 전에 성매매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문란한 건 아니다. 클럽에서조차 정중히 허락을 구한 다음에야 함께 놀 정도다. 단순히 트렌디한 것을 넘어 거칠고 자유로운 데서 나오는 세련된 멋, 베를린은 그야말로 요즘 말하는 `힙스터`들의 도시였다.

베를린이 이토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게 된 건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해체되자 앞선 사회 분위기에 큰 반감을 느꼈고, 규칙과 동일성의 해체, 긴장감의 해소 등에 대한 쾌감도 크게 느꼈다. 베를린은 더욱더 젊고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형식이 정해진 도시가 아니라 형식이 파괴된, 실용적인 도시가 된 것이다. 문화도 자연스레 이러한 맥락을 따라갔다.

저자는 베를린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모습, 경쟁보다는 배려와 포용을 중시하는 모습에서 닮고 싶은 삶의 태도를 발견했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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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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