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라틴어로 된 `Si vales bene est, ego valeo.`(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라는 문장은 "당신이 잘 계시다면 좋네요, 저도 잘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는 고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첫인사나 끝인사로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종이가 아주 귀했기에 이 문장의 첫 단어만 약어로 `S.V.B.E.E.V.` 표시하기도 했다. 오늘의 나도 같은 말로 안부를 여쭙고 싶다. "여러분 모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고 계시다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저도 잘 지냅니다."

예상치 못한 불청객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조금 더 참으며 전달되는 지침을 따라야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빈번해지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우리 생활도 빠르게 개인화되며 변화하고 있다. 사람 간 접촉을 피하게 하는 소비행태, 여가문화, 산업구조 등 몇 년에 걸쳐 이뤄질 사회변화가 불과 몇 주일 만에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찌게에 숟가락을 넣어 함께 나누어먹는 음식문화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혼밥 내지 홈밥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젊은이들 가운데 데이트 자체를 포기하는 `집콕족`도 늘어간단다. 물건구매는 대형매장보다 온라인 채널로, 외식은 배달앱 주문으로 대체되는 소비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큰 사무실과 교실에 많은 사람이 모여 일하고 공부하는 것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화상회의와 강의를 듣는 것도 변해가는 일상이다. 미국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자기 보호를 위해 총기구매가 늘고 있다니, 이웃과의 대면을 피하거나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상황이 되어 간다.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는 새삼 `사람만이 희망`임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한 순간에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는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의 약함을 알고 이웃의 연약함을 생각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듯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이 어려운 사태를 수습해가는 것도 희생적인 이웃들 덕분이었다. 미래학자인 리프킨은 이런 존재를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곧 `공감하는 인간`이라 정의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웃과의 교류와 친교를 통해 성장해가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감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고통을 주고받으며 혐오와 갈등을 부축이면서도 공감을 통해 언제든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인류를 찾아든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고 존중하며 이웃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는 공감능력부터 먼저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인간만의 따스한 느낌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새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나보다는 이웃의 안녕을 먼저 챙기고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S.V.B.E.E.V.`를 우리 서로를 위해 자주 사용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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