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최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대형화재로 3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유형의 대형 화재는 2019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40,018건의 화재로 모두 284명이 사망하고 2231명이 부상당했다. 하루 평균 110건 이상의 크고 작은 화재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대전시도 2019년 877건의 화재가 발생해 71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국가적으로 세월호 이후 매년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찜질방, 노인요양병원, 대형공사장, 숙박시설 등 화재에 취약한 곳이 많았다.

끊이지 않는 화재에 대응해온 발전 과정을 보면 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공진화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화재의 원인을 보면 화재에 취약한 값싼 자재 사용, 인간의 화재 불감증 부주의, 불법 증축, 비상구 폐쇄, 그리고 화재경보기, 스프링클러, 소화기, 자가발전시설 등 화재안전시설 미가동 등이다.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방관이 불길로 뛰어들어 진압할 수 있어야하고 화재에 강한 재료들을 내외장재로 사용해야 하며 화재 안전 법규를 강화하고 지켜야한다.

화재는 조선시대에도 국가적 관심사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서울은 관악산이 불의 기운이 강해 경복궁 뒤의 북악산이 제대로 막아주기 어려워 불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경복궁 앞에 두 개의 해태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세종대왕 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관인 금화도감이 설치되었고 금화도감 소속의 멸화군들은 도끼와 쇠갈고리, 밧줄 등을 갖추고 물에 적신 천을 매단 장대와 퍼온 물을 이용해 화재현장에서 불을 껐다. 뜨거운 열기와 불꽃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방법이 없었던 멸화군들은 불을 끄기보다 도끼와 쇠갈고리를 통해 불이 붙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주변을 정리하여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소방관들은 두꺼운 가죽 코트와 헬멧, 외부로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는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을 누볐으나 불길로부터 직접 소방관들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1960년대 500도가 넘어도 견디고 폴리에스터보다 2.5배 강도가 높은 아라미드 섬유 개발 덕택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위험한 직업이고 때문에 국민의 신뢰가 가장 높은 직업군이기도 하다. 2020년 4월 1일자로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다. 인력과 소방 설비 모든 것을 충분히 갖춰 보다 안전한 소방관의 활약을 기대한다.

화재 발생 시 화재에 강한 내외장재 소재는 중요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는 213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 중 하나였다. 당시 전동차의 실내와 천장은 불에 탈 때 유독성 가스를 내뿜는 섬유강화플라스틱과 염화비닐 소재였고 객차 내부 광고용 종이, 플라스틱, 아크릴판 등의 불에 타기 쉬운 소재도 화재를 키웠다. 사고 이후 불이 쉽게 옮겨 붙지 않게 내부를 개조하였으며 객실 의자는 스테인레스와 코팅 처리된 난연 섬유로 바꾸고 열차 바닥은 염화 비닐에서 합성 고무로, 단열재는 폴리에틸렌에서 잘 타지 않는 유리섬유로 바뀌었다. 2014년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유사한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의 경험과 안전에 대한 의식이 규제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여 화재 위험을 줄이게 된 사례였다. 화재 예방 및 진압과 관련한 기술은 향후에도 난열, 불연, 난연성 내외장재 관련기술, 화재 감지 및 경보 기술, 탈출 관련기술, 비상문 자동개방 관련기술, 자동소화 관련기술, 제연 관련기술, 방화벽 관련기술, 드론 및 인공지능 자율로봇 기술 등으로 계속 발전해갈 것이다. 이것은 소방산업, 건축산업, 안전산업으로 성장하여 수출과 일자리 창출의 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과학기술의 도시 대전이 주목해야 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것은 화재 안전, 작업 안전에 대한 의식, 사회적 기준을 높이는 것이고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화재의 근본 원인이 되는 다양한 요인과 취약한 곳을 정비해나가는 것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다단계 원하청 구조의 건설현장이 여전히 난열성, 난연성 자재보다 값싼 자재를 쓰고 작업 안전에 대한 환경 투자를 소홀히 다루기 때문에 더욱 악화된 사례이다. 화재 안전 관련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지만 그것을 촉진하고 안전을 높이는 것은 어떤 과학기술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사람과 안전 중심의 사회적 의식과 규범, 사회 구조 혁신의 문제인 것이다. 과학기술과 사회는 함께 진화해간다. 코로나19 신종 감염병과 대형 화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