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응접실] 100일간 코로나19 사투 신현정 대전유성보건소장

신현정 대전유성보건소장이
신현정 대전유성보건소장이 "100일간의 사투를 묵묵히 감내해준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감염병 여파로 문닫았던 유성5일장이 재개돼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윤종운 기자]
한눈에 봐도 몹시 곤한 얼굴이었다. 인터뷰를 청한 게 미안할 정도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난 석 달은 혹독했다. `뚫리면 끝`이라는 일념으로 버텨냈다. 긴 밤 함께 지새워 장벽을 세운 동료 직원들이 없었다면 무너지고 말았을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밤낮 없는 100일의 사투가 지나고, 지켜낸 울타리 안에서 다시 5일장이 섰다. 신현정(58) 대전 유성구보건소장은 "코로나19가 국내 상륙한 후부터 직원들 모두 보건소에서 살다시피 해왔다"며 "자신이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와 연일 이어지는 교대근무에도 내색 한번하지 않고 묵묵히 감내해준 직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염병 여파로 문을 닫았던 유성5일장이 재개돼 상인들이 좌판을 펴고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며 "한동안 선별진료소를 운영한 보건소가 시장 안에 위치한 까닭에 감염은 물론 상권 침체 우려까지 견뎌야 했던 시장 모든 상인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미증유의 코로나19가 대전으로 전파된 건 2월 하순이었다. 대구 여행을 다녀온 20대 여성이 그 달 21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이후 이튿날부터 26일까지 내리 4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전부 유성구민이었다. 20대 여성이 서울 거주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성구에서 대전 첫 환자가 나온 것이다. 이어 대전 전역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해 4월 30일 현재 누적 기준 40명이 발생했고, 이중 절반가량인 19명이 유성구에 사는 사람들이다. 감염병 의심증상을 보여 검사한 건수만 해도 2066건에 달한다. 대전 전체 검사건수 1만 4135건 대비 15%다. 확진자와 검사 건수 모두 5개 자치구에서 가장 많다.

신 소장은 "서울 거주자인 1번 확진자를 제외하고 사실상 대전 첫 확진자가 유성에서 나왔을 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본격적인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신 소장은 보건소를 선별진료소로 빠르게 전환했다. 대전1번 확진자가 나오기 11일 전인 2월 10일이었다. 신 소장은 "코로나19 감염의 전국 최초 발생일인 1월 19일부터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며 "대구에서 대규모로 확진 환자가 발생해 우리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대응 태세를 갖춰 나갔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전쟁에서 가장 끔찍했던 날은 2월 26일이다. 유성구 봉명동 성세병원에 근무하는 40대 여성 간호사가 양성 판정 받은 것이다. 당시 대전시 보건당국은 "해당 병원은 코호트 격리 중이고 병원 의료진과 종사자 등에 대해서는 자가격리 조처했다"고 밝혔다. 코호트 격리는 감염자와 의료진을 동일집단(코호트)으로 묶어 의료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처인데다 입원치료 중인 환자들도 많아 확진자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급속히 퍼졌다. 신 소장은 "성세병원 간호사 확진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환자 27명 정도가 병원에 있었고 유성뿐 아니라 다른 자치구 환자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성구보건소는 의료진과 환자, 퇴원한 환자까지 불러들여 전수검사에 돌입했다. 가능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벌였다. 우려와 달리 결과는 전원 음성이었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마저 판정 결과가 뒤집히며 지역사회에서는 혼선이 야기됐다. 신 소장은 "검사 키트 정확도는 100%가 아니라 95% 정도로 성세병원 사례는 일종의 `검사에러`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 와중에 시가 성세병원에 대해 코호트 격리 조처했다고 발표하는 등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 "감염증 검사 신뢰성이 다소 훼손될 여지도 있어서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난감해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지역사회 전염이 확산하면서 보건소 내부 감염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 보건소 의료진이나 직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는 순간 보건소는 폐쇄되고 이는 곧 코로나19 전쟁의 최전선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어서다. 특히 감염병 의심증상자를 대면해야 하는 업무 성격상 자신이 가족 전파의 매개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신 소장은 "보건소 직원도 사람 아니냐"면서 "감염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방호복으로 무장하는 등 방역지침을 따른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 감염 공포와 맞서 싸우면서 내 가족도 지켜야 한다는 직원들의 절박함을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게 더 마음 아팠다"고 했다.

신 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절대적인 보건 인력 부족을 절감했다. 보건소 직원은 90명 남짓으로 선별진료뿐 아니라 지역 사례관리·역학조사·방역도 도맡아 처리했다. 신 소장은 "코로나19 대응업무를 하면서 무엇보다 전문 보건인력이 달린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며 "유성구보건소 직원이 90명 정도 된다고 하니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상황총괄, 역학조사, 환자이송, 검체이송 등으로 인력을 나누면 이번 코로나19 같은 위기를 대응하는 데는 부족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 시점에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올 가을 재유행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전망과 앞으로 비슷한 신종 감염병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커졌다는 데 있다"며 "위기가 닥쳐 해결하려 하기 전에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면 보건인력을 확충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공중보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신 소장은 "질병관리본부와 감염증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재확산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지 않느냐"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추석 등 명절이 끼어있는 10월쯤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감염증을 극복했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는 특별한 시기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며 "의료진의 헌신과 함께 코로나19에 슬기롭게 대처해온 대전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앞으로도 더 넓게 더 깊이 발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승현·천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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