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구 대한통운에서 동구 아름다운복지관을 오가는 512번 시내버스에는 `세 가지`가 없다. 급출발, 급가속, 급감속. 이른바 `3급`이다. 3급을 하지 않으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버스를 모는 권용대(56·사진) 대전승합㈜ 운전사는 거창한 친환경 운전보다 눈앞에 있는 승객 안전을 지키기 위해 3급을 끊었다. "버스에 타는 노인들을 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 생각나고 어린 아이들 보면 손주 같은데 어떻게 함부로 운전하겠습니까. 못해요 못해." 권 씨는 손사래까지 쳤다.

권 씨가 운전하는 512번 버스는 또 기다릴 줄 안다. 노인이나 임산부, 장애인 등 몸 약한 이들이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을 때까지다. "좀 빨리 가겠다고 서둘러 버스를 출발했다가 누구 하나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마음 아프잖아요. 차내 사고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러면 안 돼요. 내가 10초만 기다려주면 되는데 그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2010년 지금 회사에 입사해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던 비결인 셈이다.

기다림으로 지체된 시간은 그만큼 운전사의 운행 후 휴게시간을 갉아먹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승객 안전에 신경 쓰다 보면 근무시간이 좀 길어질 때도 있죠. 그러면 운행 후 쉴 수 있는 내 휴식시간이 짧아지는 것이고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래 봐야 5분, 10분이에요. 사고 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권 씨가 입에 `안전`을 달고 사는 건 512번 버스가 다니는 노선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통운을 나선 512번 버스는 회덕동주민센터, 오정동, 대전역·중앙시장, 신흥동 시외버스정류소, 고산사, 산내초교, 아름다운복지관 등을 차례로 돈다.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512번 버스의 주요 고객이다. 2017년 4월부터 이 복지관을 이용하는 중증장애인과 보호자, 시설종사자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자 대전시, 동구, 버스운송사업조합, 한국도로공사가 운영계통 변경과 복지관 인근 종점지 조성에 힘을 모았다. 한발 더 나아가 512번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9대는 모두 저상버스로 바꿨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위한 대전시와 대전승합의 배려다.

저상버스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게 승차할 수 있도록 자동경사판 등 승강설비와 휠체어 고정장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차량을 말한다. 시는 2005년 저상버스 20대 도입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전체 버스의 절반가량을 저상버스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무사고와 친절함, 안전운전 등을 인정받아 올 1분기 시로부터 모범 운수종사자 표창을 수상한 사람도 속 상할 때가 있다. 가끔 버스가 늦게 왔다며 타박하는 승객들 때문이다.

권 씨는 "출퇴근시간 혼잡구간에 걸리면 버스 운행이 불가피하게 늦어질 수도 있는데 일부 승객은 `왜 이리 늦게 오느냐`고 짜증을 낸다"며 "늦고 싶어 늦은 것도 아닌데 그럴 때면 좀 섭섭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승객을 가족처럼 여기듯 시민들도 운전사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조금 이해해 준다면 서로 좋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운전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는 권 씨가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정년이 5년 남았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정년 이후에도 버스 운전을 하고 싶습니다." 권 씨가 버스 시동을 걸며 되뇐다. `오늘도 친절하게, 무엇보다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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