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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펼쳐진 손바닥엔 사람의 향기가 있다

2020-04-30기사 편집 2020-04-30 08: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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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람의 손은 입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손의 생김새 자체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농사꾼의 손은 생명을 키우느라 부드러움을 다 땅에다 심은 것 같습니다. 씨앗을 만지는 손은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박경리 선생님은 노동의 땀을 모르고 어찌 창작의 땀을 알겠느냐고 평소 호미를 들고 손수 농사일을 하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손은 글 쓰는 손이 아니라 노동하는 손으로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내의 손들은 대개 젖어 있고 어쩌다 바른 매니큐어도 군데군데 벗겨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늘 축축하게 젖은 아내의 손은 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미묘한 감정 상태까지 읽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손 자체보다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사람의 이미지는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집 한 권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괜히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꽃을 들고 있는 손보다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돈을 세고 있는 손보다는 새를 보듬고 있는 손이 아름답고, 무엇을 움켜쥔 손보다는 모든 걸 내려놓은 빈손이 한결 자유로워 보입니다.

어깨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어깨너머로 적지 않은 것을 읽어냅니다. 나이가 든다는 이유 하나로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얻은 지혜의 8할이 실은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입니다. 4년 동안 대학에서 배운 것은 사실 10%도 안 될지도 모릅니다. 주먹을 꼭 쥐고 움켜쥔 것을 바라보다가 어느 날 맥없이 풀어져 펼쳐진 빈 손바닥을 보니 빼앗기지 않으려 움켜쥐었던 것들보다 더 귀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여름을 지나며 씨앗이 매미의 울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깨너머 느긋이 세상을 읽는 법도 아는 나이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도 오랫동안 지켜보며 그 어깨너머 풍기는 향기가 나올 때 하나씩 알아가는 느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말보다 손으로, 손도 움켜진 것보다 크게 품을 수 있는 빈 손바닥의 크기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교과서 밖에서, 자연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우치고 배웁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계절에 대한 만남, 또 다른 길에 대한 만남 속에서 인생을 알아가고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태생적으로 만남은 이별을 달고 태어나는지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지나온 곳에 대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할 때도 우리는 펼쳐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합니다.

한 계절과 추억, 사람들과의 헤어진 아픔을 쟁여야 내 앞에 또 다른 만남이, 그리고 새 길이 열린다는 것을 흐르는 세월에 가져다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만나서 영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름다운 시절도 한순간 지나가면 헤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도 백 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잠시 내 손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움켜지려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펼쳐 잘 발효된 사람의 향기를 내 안에 품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는 코로나19로 팬데믹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움켜진 것들에 대한 허상을 봤습니다. 바이러스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향기를 잃은 앞이 보이지않는 미래를 봤습니다. 펼쳐진 손바닥에 위에 끝까지 남아야하는 것이 사람의 향기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가희 시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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