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스칸 (남정호 지음/ 아르떼/ 220쪽/ 1만 8800원)

백남준
백남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같은 모습은 SF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1984년 새해 첫날, 전 세계인은 지구촌 시대의 서막이 올랐음을 실감하게 된다. 백남준은 "대륙간 하늘이 막혔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철의 장막에 갇힌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라며 대서양으로 가로막혀 있는 유럽과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야심 찬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었다. 그는 뉴욕의 WNET 방송국 스튜디오와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동시에 연결해 11개국에 이 작품을 생중계로 송출했다. 이 작품명은 `1984`에서 온 빅브라더의 통제 아래 놓일 것이라며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을 인유한 것으로 전 세계에서 2500만 명이 시청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 체제로 이어진 20세기를 경험한 백남준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회의 추악한 일면을 목도하며 예술가로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가치를 모색한다.

소통의 부재가 비극을 몰고 왔다고 생각한 그는 쌍방향 소통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소통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작품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바이 바이 키플링`, `세계와 손잡고` 같은 위성아트다. 그에게 인공위성은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기에 작품을 위한 오브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세 작품을 일컬어 `위성 3부작 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위성아트들은 언어가 달라도 예술로 인류가 하나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계와 손잡고` 에는 소련의 음악가 세르게이 큐료힌과 그의 밴드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냉전 체제가 무너지기도 전에 이념을 초월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백남준의 작품들은 국가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2006년 백남준이 74세의 일기로 타계하면서 관심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동서양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예술을 혁신해나간 거장으로서 백남준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2006년 뉴욕 특파원으로 백남준의 장례식을 취재하면서 그의 일본인 아내이자 전위예술가인 구보타 시게코와 인연을 맺은 뒤 수년에 걸쳐 뉴욕을 오가며 인터뷰했고, 이를 바탕으로 백남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백남준의 흔적을 찾아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재구성한다. 특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백남준의 일본 시절이 담겨 있다. 단순히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을 개별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서부터 영감을 준 주변 인물들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백남준 예술의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저자는 문화 유목민을 자처한 백남준의 파란만장한 흔적을 따라가며 그가 관통한 격랑의 역사와 삶을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놓은 당시 20세기 시대상과 함께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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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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