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 대전 한밭수목원
대전시민의 심장 '한밭수목원'

29일 대전 한밭수목원 동원을 찾은 시민들이 수변데크를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29일 대전 한밭수목원 동원을 찾은 시민들이 수변데크를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나의 이데올로기. 널 생각하면 가슴에 바람이 분다. 수천수만의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과 수풀 사이를 헤집고 마침내 불어 닥친다.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 이 청량한 바람이 일기까지 수 십 년 식물의 세월과 견고한 신념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나의 존엄은 너의 웅장한 위엄과 비례한다. 미로처럼 얽힌 길에서 아직 피지 않은 장미와 전설을 품은 소나무를 만나고 단풍나무는 수줍은 듯 가지를 늘어뜨린다. 하늘 향해 쭉 뻗은 졸참나무와 바람에 흐느끼는 버드나무는 빛깔 고운 원추리와 돌단풍, 가지복수초, 깽깽이풀, 노랑무늬붓꽃을 말없이 품는다. 그 뿌리의 깊이와 원대함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심장은 뛰고 혈관에 피가 돈다. 좌심실·우심실 같은 너의 동원과 서원에서는 쉴 새 없이 맑은 산소를 내뿜는다. 물고기를 먹이고 키우며 태풍을 막아내는 맹그로브는 너의 너른 품안에서 열대의 꿈을 꾼다. 우리의 이념, 우리의 존엄, 우리의 심장 `한밭수목원`은 인위적으로 설계·제작된 가공품에서 본디 그대로의 태곳적 자연으로, 살아 숨 쉬는 원시의 생명체로 부활했다.

◇어디에도 없는 도심속 수목원 = 대전의 중심 둔산대공원(서구 만년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밭수목원은 2000년 수목원 기본·실시계획을 시작으로 2001-2004년 서원, 2005-2009년 동원, 2009-2011년 열대식물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10년에 걸친 건립 대장정을 마쳤다. 한밭수목원은 전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수목원으로 국·시비 314억 원이 투입됐고 면적은 37만 1466㎡(11만 2000평)에 달한다. 무궁화원, 야생화원, 관목원, 목련원, 암석원 등 24개 주제별로 목본류 1105종, 초본류 682종 모두 1787종의 식물자원을 식재·전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지구의 탄소 저장소`라고 불리는 맹그로브를 주제로 한 열대식물원도 조성했다.

◇대전시민이 지켜낸 한밭수목원 = 2020년 현재 연간 130만 명 넘는 대전시민들과 관광객이 몰려드는 지역명소로 거듭났지만 한밭수목원이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9년 5월 한밭수목원 개원 당시 대전일보 보도를 보면 1980년대 말 대전 둔산지구 개발이 이뤄질 때 99만여㎡의 호수공원 조성계획이 마련됐으나 이후 추진 과정에서 공원 구역이 불과 10만여㎡로 축소되고 나머지는 택지로 변경됐다. 대전일보는 `토지공사가 정부대전청사 부지로 대규모 공공부지를 내놓으면서 손실분 보전을 위해 대규모 공원계획을 슬그머니 빠뜨린 것`이란 지적과 함께 특별취재반을 꾸려 집중보도에 들어갔고 시민들은 지역언론의 문제 제기에 응원을 보냈다. 결국 둔산대공원 계획은 지역 여론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56만 9000㎡를 살리는 것으로 결론 났다. 그렇게 되찾은 땅에 1997년 평송청소년문화센터, 1998년 대전시립미술관, 2003년 대전예술의전당, 2007년 이응노미술관 등 문화예술 공간이 속속 들어섰고 한밭수목원은 둔산대공원 조성 역사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수풀이 속삭이는 한밭수목원 속으로 = 4월의 수목원은 온통 신록의 물결이다. `신록예찬`을 쓴 이양하 선생에게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가 있다면 대전시민에겐 한밭수목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한밭수목원을 한가득 메우고 있다.

한밭수목원 측에서 추천하는 산책로는 5개 코스다. `솔바람길`은 동원 바닥분수-대전사랑동산-목련원-소나무원-암석원으로 이어진다. 소나무원에 대전의 시목(市木)인 소나무가 큰 숲을 이뤘다. 시화 백목련도 식재돼 있다. 백목련은 우아하고 품격 높은 시민정신을 상징한다. `은빛여울길`(동원 바닥분수-장미원-향기원-수변데크-화목정-수변데크-암석원)은 650m로 40분 정도 걷는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에 숨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암석원, 장미가 만발하는 장미원, 정자 화목정은 한밭수목원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장수하늘길`(동원 바닥분수-약용식물원-특산식물원-천연기념물 후계목-식이식물원-암석원)에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 예천 천향리 석송령 등 35개 종목 후계목이 뿌리를 내렸다. `푸른숲길`은 소나무숲-침엽수원-참나무숲-서원입구를 잇는 가장 긴 1㎞ 산책로다. 한시간 가량 서원을 둘러가는 길에서 숲속 식물들이 만들어낸 살균성 물질 즉 `피톤치드`를 마시며 편안한 사색에 빠져 든다. `속삭임길`(서원입구-벚나무길-명상의숲-습지원-숲속문고-서측입구)은 30분 코스다. 자기사랑, 자존심, 고결이 꽃말인 수선화 군락, 잎이 지고 꽃이 피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상사화가 발길을 잡는다. 신록예찬에서 이른 대로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록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밭수목원 안내도를 들여다보기 전에 엑스포시민광장 양 옆으로 길을 낸 동원과 서원의 안채로 무작정 들어서길. 그 내밀한 정원 안에선 충남 청양 칠갑산 기슭에서 살다 칠갑저수지 건설로 수몰될 뻔한 소나무의 전설이 내를 이루고 너와집 지붕을 이는 굴참나무가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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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대전 한밭수목원 동원을 찾은 시민들이 수변데크를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29일 대전 한밭수목원 동원을 찾은 시민들이 수변데크를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29일 젊은 남녀가 한밭수목원 내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29일 젊은 남녀가 한밭수목원 내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걷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한밭수목원 내 열대식물원. 맹그로브 주제원과 함께 야자원, 열대화목원, 열대우림원 등을 조성했다. 사진=한밭수목원 제공
한밭수목원 내 열대식물원. 맹그로브 주제원과 함께 야자원, 열대화목원, 열대우림원 등을 조성했다. 사진=한밭수목원 제공
29일 한밭수목원 서원 소나무숲길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29일 한밭수목원 서원 소나무숲길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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