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석 달간 지속되던 코로나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 하다.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예배나 소규모 모임 등이 가능하다는 질본의 발표가 있었다. 학교의 넓은 운동장을 빌려 사람 간 간격을 유지한 채 공공기관 시험이 치러졌고, 교회나 학교는 사람 간 간격을 넓히는 등의 다양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예배와 대면 수업을 준비 중이다. 모두, 다행이면서도 한 편으론 불안한 마음일 것이다. 7주간 온라인 수업을 해 온 나도 5월 연휴가 지나면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연구실과 강의실 안전수칙에 대한 온라인 교육을 받았고, 긴급 상황에 대비해 어떤 행동지침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접할 수 있었다. 선생도 학생들도 열 체크를 해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수업하는 동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혹여 한 명의 의심증상자가 나오게 된다면 즉시 교실이 폐쇄되고 일은 다시 복잡해질 것이다.

연극학과의 특성상 밤늦은 시간까지 제작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어서 매번 퇴근시간이 새벽을 훌쩍 넘겼었다. 장면만들기를 진행하며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가던 우리의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이었던 시간들을 기억해 봤다. 그러자 "우리는 코로나 이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각종 매스컴의 머리기사에 내가 유독 슬펐던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그 말은 자못 섭섭하게 들리더니 이내 안타까웠고, 물리적인 공포처럼 다가왔다. 그 말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의 등을 토닥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밤늦게까지 풀리지 않은 역할에 대한 고민을 들고 와 "커피 한 잔 사주세요"라는 상기된 목소리도 들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나와 너의 물리적 거리만을 벌려 놓은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만들어진 모든 관계의 법칙을 초기화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법과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거리를 유지한 채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겠구나 싶었다.

안톤 체홉이 쓴 세기말의 희곡들이 있다. `갈매기`를 비롯해 `세자매`, `바냐아저씨`, 그리고 `벚나무 동산`이 대표적인 그의 4대 희곡이다. 이 작품 속에서 모든 인물은 외로워한다. 그들이 외롭고 쓸쓸한 이유는 갖가지지만 모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아가 삶이라고 하는 대상과의 지독한 짝사랑에서 얻어진 상처들 때문이다. 그들은 반면 이 관계를 회복하고 그래서 그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굵직하고 자극적인 사건 하나 진행되지 않는 체홉의 희곡을 갖고 이 상처와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들을 어떻게 무대 위에 구현할 것인가는 모든 연출가와 배우의 고민이다. 내가 객석에 앉아 관람했던 체홉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이 앉고자 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만지고 얼굴을 부비고, 등을 토닥이는 행위들로 구현됐었다.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서로가 서로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들은 얼었던 몸과 마음의 체온을 올리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말을 나눌 수 있는 마중물이 돼줬다. 진기하고 화려한 미장센 하나 없이도 우리가 체홉의 작품에 매료되는 이유다.

"코로나 이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무서운 것은 "백신이 나오고 그래서 완전한 코로나의 종식이더라도"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를 변증법적 진화론이라는 무한긍정의 맥락에서 살피며, 아마도 세상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당장 코앞에 직면한 위태롭고 험한 불길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예술하는 사람의 몽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역사의 운행과정에서 채비해두지 않았을까? 체홉은, 다시 상처를 받고 외로워지더라도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고 등을 토닥여줘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남긴 작가였다. 체홉이었다면, 다시 세기말과 같은 불안의 시대를 사는 인간들에게 어떠한 충언을 했을까.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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